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오랜만의 통화였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한동안 농구 중계방송도 보기 싫었다”고 했다. 원망과 회한이 묻어났다. 그래도 한줄기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아니 결코 놓을 수 없었다.
김승현(33)은 ‘천재 가드’ 소리를 들었다. 동국대를 졸업하던 2001년 프로에 뛰어들어 2001~2002 시즌 대구 동양(현 고양 오리온스)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자신은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선수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16시즌째를 맞고 있는 국내 프로농구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강동희(1966년생)-이상민(1972년생)을 잇는 대형 포인트가드의 등장은 장안의 화제였다. 공교롭게도 6년씩 차이가 나면서 ‘6년 주기설’도 나왔다.
김승현은 팀을 6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의 현란한 패스워크와 창의적인 플레이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2003~2004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도움주기왕에 오르는 등 통산 네 차례나 도움주기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4~2005 시즌엔 국내 프로농구 역사상 유일하게 두자릿수 도움주기(평균 10.5개)를 기록했다.
2009년‘천재’에게 크나큰 시련이 닥쳤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팀 기여도가 떨어졌다. 구단은 연봉 삭감을 요구했고, 이에 맞선 김승현은 구단과의 이면계약을 폭로했다. 구단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김승현과 2006년부터 5년간 연봉 4억3000만원에 계약했다고 한국농구연맹(KBL)에 신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연봉 10억5000만원에 이면계약을 한 것이다. 3년간 지켜진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김승현은 온갖 비난 속에 임의탈퇴 선수가 됐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다시 코트에 선다는 보장도 없었다. 가슴이 막막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문득 ‘내가 왜 운동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승현이 코트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겼다. 그가 먼저 “법원의 판결로 보장받은 밀린 연봉 12억원을 한푼도 받지 않을 테니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해달라”고 했다. 오리온스 구단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선교 한국농구연맹 총재도 “임의탈퇴 철회는 총재 권한”이라며 “구단에서 철회 요청이 온다면 곧바로 승인하겠다”고 했다.
아직 걸림돌이 있다. 심용섭 오리온스 단장은 “김승현이 올 시즌엔 오리온스에서 명예회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중간하게 말했다. 구단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김승현이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을지는 미지수다. 또 오리온스의 전력 강화를 우려하는 일부 구단의 반발도 예상된다.
김승현은 “‘겨울스포츠의 꽃’이라는 프로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며 “코트에 복귀하면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로 관중몰이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지금 프로농구는 스타 기근이다. 하루빨리 김승현이 보고 싶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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