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점심 먹고 쉬다가 오후 훈련 하러 나가려던 참이었다. 이성훈 단장이 부른다는 전갈이 왔다. ‘아! 나구나.’ 김동욱(30)은 김승현(33)의 트레이드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그때 느낌이 왔다”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엔 실망감이 컸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마음먹자고 다짐했어요. 김승현이라는 선수가 누굽니까? 한때 국내 최고의 가드 아닙니까.”
김동욱은 삼성에 빚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2라운드에서 뽑아줘 이만큼 키워준 팀이 삼성이죠.”
경기도 용인시 삼성 숙소에서 고양시 오리온스 숙소로 오는 동안 자신의 농구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윽고 김동욱은 삼성 파란색 유니폼 대신 오리온스 빨간색 유니폼을 입었다. 고려대 시절 입었던 익숙한 색깔이다. “사실 대학 때는 많이 다치기도 하고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운명의 장난이랄까. 첫 상대가 하필 삼성이었다.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왔다. 대학 시절 연세대와의 정기전 때도 이런 부담은 없었다. 경기 막판 자유투 4개를 연거푸 놓쳤다. 자유투 성공률 72.5%인 그이기에 확률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프로 와서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자유투를 놓치는 바람에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연장전 막판 동점 상황에서 결정적인 3점슛을 꽂으며 팀에 극적인 승리를 안겼다. “공만 오면 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슛이 들어가는 순간을 “농구 시작해서 첫 골 넣었을 때의 짜릿함”이라고 비유했다.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경기 승리로 오리온스는 최하위 자리를 삼성에 물려줬다. 한때 스승이던 삼성 김상준 감독은 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동욱이 가세한 뒤 오리온스는 11경기에서 4승7패를 기록중이다. 결코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지만 그 전까지 20경기에서 3승17패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게다가 이동준과 허일영 두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빠져 있다.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은 “동욱이가 온 뒤 모두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추 감독은 “오리온스 경기를 보면서 고양시 농구인들이 함께 울었다”는 한 지인의 문자를 선수들에게 돌리며 “꼭 승리하자”고 다짐했다. 오리온스는 27일 현재 6위와 7경기 차다. 이제 24경기가 남았다. 하지만 선수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삼성에서 늘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김동욱은 “한경기 한경기 이기다 보면 어느새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빨간 유니폼이 어울리는 김동욱의 기적은 일어날까?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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