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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선택막는 강훈련…대학가도 앞길 막막

등록 2005-07-20 18:49수정 2005-07-20 21:47

서울의 한 고등학교 럭비부 선수들이 6월 초 오후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자체 훈련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선수들이 모든 수업을 받고 운동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럭비부 선수들이 6월 초 오후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자체 훈련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선수들이 모든 수업을 받고 운동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스포츠긴급점검] 내 아이 운동부 보내기 겁난다

1.누가 이들을 때리는가?
2.우리도 외박 나가고, 휴가 가요.
3.학생인가? 프로선수인가?
4.지도자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5.금메달에 희생된 수많은 선수들
6.대학을 바꾸자, 연고대부터

 “이제 공부로는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중학교 때부터 럭비공을 만진 정아무개(18) 선수는 이제 대학입시를 앞둔, 서울의 한 고등학교 럭비부 3학년 선수다. 전국대회 나가 중간 이상의 성적을 올린 경력 때문에 연·고대에 갈 수는 없지만, 어지간한 대학에는 갈 수 있다. 그러나 대학 들어가서 럭비를 한다고 해서 전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교럭비부 3학년 정아무개 매일 6시간반 훈련…집에오면 잠자기바뻐
수업내용 귀에 안들어와 앞날 생각하면 한숨만

 “선배들 보면 연·고대 가기는 한다. 하지만, 대학졸업 뒤 대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 가는 게 반드시 옳은 가 고민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운동선수들이 대학가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장의 학생선수들은 대학 이후의 삶 등 더 실제적인 걱정을 하고 있다.

 “대학에 가서 공부하면 안되나?” 이런 물음에 “운동부에 있으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 체육교사 자격증을 따더라도 자리가 많지 않다”고 한숨 짓는다.


13살부터 운동에만 매달려온 이 선수는 운동 말고는 도통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반에서 상위권에는 들었는데…. “중학교 때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근근히 다른 아이들을 쫓아갔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따르고, 그 압박감에 운동에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아침 수업시작 전인 7시에 모여 1시간30분 가량 운동하고 8시40분 수업에 들어간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다시 3시간 운동. 학교 합숙소에서 저녁 먹고 웨이트트레이닝 등 체력훈련 2시간. 집에 밤 10~12시 들어가면 녹초가 돼 떨어진다.

다음날 수업시간, 이 선수는 잠을 쫓으려고 애쓰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더라도 대회 출전으로 빼먹은 수업 때문에 선생님의 설명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사들도 운동부 학생들이 잠을 자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기 마련이다. 가장 황당하고 좌절스러울 때는, 같은 반 친구의 사회탐구 노트가 글씨로 빽빽한데 자신의 노트가 텅 비어있을 때다. “아!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힘이 쪽 빠진다.

이것만이 아니다. 1학년 때는 장비 준비하고, 합숙소 청소나 빨래 등 뒤치다꺼리로 정신이 없다. 2학년 때부터는 좀 나아지지만 완전히 프로선수가 된것처럼 운동밖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 꿈꾸는 게 일본 진출이다. 일본의 한 대학 럭비부에서도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일본가서 한국에서처럼 운동만 계속 한다기보다는, 일본어라도 제대로 익혀서 일본관광 가이드라도 할 생각”이라는 게 이 선수의 소망이다. 학업에 필요한 경비와 생활비 등 연간 1000만원에 이르는 돈을 충당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을 가겠단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운동할 거면 꼭 필요한 영어 정도만이라도 집중적으로 배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 교과와 멀어지면서 틈틈히 소설책과 사회과학책으로 독서를 해왔다는 이 선수가 일본에 가서 관광 가이드라는 어엿한 직업이라도 갖는다면 축하해 줄 일이다. 대부분의 학생 선수들은 이런 야무진 전망조차 없기 때문이다.

학생선수 절반 오후 수업 빠져

한국 학원 운동부에 ‘오후 수업은 없다’.

올해 대한체육회가 운동부 지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수업 참여실태를 보면, 오후에 수업을 2시간 이상 듣는 선수들은 40%다. 나머지 60%는 아예 오후 수업을 듣지 않거나(46%), 1시간(14%) 들을 뿐이다.

초·중·고·대학 운동부 지도자 200명과 국가대표팀 지도자를 대상으로 물어본 이 조사에서 학생 선수들은 오전 수업도 완전하게 듣지 못한다. 4시간 모두 수업에 들어가는 선수(78%)가 대부분이지만, 오전에도 1시간(3%), 2시간(8%), 3시간(11%) 등 1시간 이상 수업을 빼먹는다. 수업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운동하는 선수는 전체 40%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업을 빼먹는 횟수가 늘어나고 운동 강도가 세진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학업 무관심은 커지고, 운동 외에 다른 방식으로 대학에 진학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때는 이미 늦었다.

학업을 방기하면서 선수들은 반쪽이 된다. 언어와 수학 등 기본이 되는 교과를 온전히 배우지 못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지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꼴이다. 교실 안 또래 집단과 어울리거나 운동 외의 다양한 사회체험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문제는 이들 선수들이 깔때기통처럼 좁아지는 상급학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했을 때다. 운동 외에 다른 것은 모르는 이들이 겪는 좌절감은 당해본 사람 아니면 모른다. 대학까지 진학 했다가 부상으로 중도탈락한 한 선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정신적 공황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원스포츠를 바탕으로 엘리트체육의 성과를 거둬 들이는 대한체육회나 문화관광부 어느 곳에서도 선수들에 장래나 진로 문제는 ‘선수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원스포츠와 관련한 조직이나 직제·예산이 문화관광부 쪽에 있어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국 명문대학에서는 고교시절 운동 활동을 한 학생이 가산점을 받고, 일본의 대학 럭비경기 때 학생 선수들이 영웅으로 취급받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국내 최고의 축구스타가 대학시절 담당교수도 모르고, 같은 과 학생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는 것은 공부하지 않는 한국 학원 스포츠의 어두운 단면이다.

강신욱 단국대 체육대학 교수는 “최소한의 학업이수조차 포기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운동선수들에 대한 어른들의 폭력”이라며 “수업시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원스포츠의 폭력과 비리 제보와 개인 경험담을 받습니다.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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