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지난해 5월 미국 스포츠신문을 많이 장식했던 인물은 미국프로농구(NBA)의 명장 필 잭슨(67) 감독이다. 엔비에이 통산 3시즌 연속 우승은 5번 있었는데, 그중 3번이 그의 작품이었다. 시카고 불스에서 한차례, 엘에이(LA) 레이커스에서 두차례 3연패를 달성한 그는 지난 시즌 사상 첫 10번째 우승 도전에 실패한 뒤 66살의 나이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그의 퇴장을 아쉬워하며 지금도 복귀를 바라고 있다.
제리 슬론 감독은 유타 재즈에서만 1988년부터 23년 동안 감독직을 맡으며 팀을 1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엔비에이 역사상 한 팀에서 1000승 이상을 거둔 유일한 감독이고, 존 스톡턴과 칼 말론을 활용한 ‘픽 앤 롤(pick and roll)의 대가’이다. 그가 지난 시즌 도중 감독직에서 물러났을 때 그의 나이는 만 69살이었다. 팬들은 그의 퇴장을 안타까워하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국내 프로농구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신선우 당시 에스케이(SK) 감독과 안준호 삼성 감독이 동시에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동갑내기 두 감독은 ‘최고령 사령탑’으로 불렀지만 지난해 나이는 ‘고작’ 55살이었다. 세대교체 바람에 밀려 안 감독이 먼저 물러나자, 에스케이 구단은 기다렸다는 듯 신 감독이 외국인 선수를 점검하러 외국에 나간 사이 ‘총감독’으로 발령내는 꼼수를 둬 옷을 벗겼다. 그즈음 안 감독은 사석에서 “신선우 감독은 내 유탄을 맞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 프로농구 코트에는 남녀를 통틀어 50대 감독이 단 한 명뿐이다. 1961년생 김진 엘지(LG) 감독으로, 그의 나이도 이제 51살이다. 김 감독과 동갑인 한 농구인은 최근 사석에서 “51살이면 아직 한창인데 최고령 감독이라니 서글프다”며 한숨지었다.
현역감독들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은 3년 전 40살에 사령탑에 오른 뒤 “솔직히 조금 더 나이가 든 뒤 감독을 맡고 싶었다”며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게 감독’이라는 선배 감독님들 말씀이 요즘 실감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신선우 전 감독이 가지고 있던 통산 최다승(362승)을 갈아치운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최다승 감독도 좋지만 최장수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미국프로농구 명장 래리 브라운(72)이 2008년 샬럿 밥캐츠의 새 사령탑에 앉았을 때, 그의 나이는 68살이었다. 많은 나이에도 세 시즌 동안 감독직을 맡으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브라운은 지난해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칠순이 넘은 지금도 시즌이 끝나면 각 구단의 감독 후보 명단에 빠지지 않는다. 국내 프로농구 코트에도 오랜 포도주 같은 명장이 그리운 요즘이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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