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장면1. 프로농구 케이티(KT) 전창진 감독은 지난달 17일 전자랜드와의 인천 경기가 끝난 뒤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전자랜드의 선발 라인업을 보고 실망했다”, “이기려는 생각이 있으면 그런 라인업으로 안 나왔다”며 상대를 자극했다. 전자랜드가 발목 부상 중인 허버트 힐을 비롯해 문태종, 신기성 등을 선발에서 뺐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이날 경기 지휘를 김승기 코치에게 맡기고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지켜봤다. 전 감독이 겨냥한 상대는 그의 고교 후배인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으로, 평소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케이티는 전자랜드에 정규리그 5라운드까지 1승4패로 밀렸고, 이날도 고전했다. 당시 케이티는 정규리그 3위가 유력한 상황에서 6위가 확정적인 전자랜드와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전 감독은 이런 상대에게 심리전을 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유도훈 감독은 이 일 이후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면2. 전창진 감독은 지난달 21일 잠실 삼성전에서 77-80으로 진 뒤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특정 심판의 실명을 거론하며 판정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심판의 휘슬 하나가 승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라며 “휘슬을 장난삼아 불면 안 된다. 그 심판은 우리와 악연이 있다”고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을 했다. 전 감독은 “벌금 많이 나오겠군…”이라고 하면서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전 감독의 발언을 두고 재정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감독이 징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심판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인 것은 왜일까? 주변에서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판정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다는 복선으로 해석한다.
평소 전창진 감독의 말은 거침이 없다. 특히 외국인 선수를 휘어잡기로 유명하다. 2009~2010 시즌 도중엔 제스퍼 존슨을 다그치며 “어디서 주접을 떨고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중계방송을 타고 안방에 전달됐다. 올 시즌 초반이던 지난해 11월6일 인삼공사와의 안양 경기에서도 작전시간 도중 찰스 로드에게 “정신 좀 차려.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라고 쏘아붙였다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케이티 팬들조차도 감독 퇴진을 거론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반면 “건방진 외국인 선수를 잘 다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전 감독이 케이티 사령탑에 오른 뒤 3년째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걸 보면 효험이 없지 않은 듯하다.
전 감독은 8일부터 전자랜드와 6강 플레이오프를 펼친다. “선발 라인업에 실망했다”던 바로 그 상대다. 전 감독의 심리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선수들에겐 또 어떤 ‘언어의 용병술’로 승부욕을 자극할지 이번 6강 플레이오프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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