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 트윈스 이대형
[아하! 스포츠]
규칙집에는 없다. 어긴다고 심판이 눈에 힘주지도 않는다. (물론 경찰 출동 안 한다.) 그러나 경기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른바 스포츠 세계의 ‘불문율’이다. 묻지 않아도 당연히 지켜야 한다.
야구에서 공수 교대 때 수비수가 마운드를 밟고 지나가는 것은 금물이다. 퍼펙트게임 등 대기록을 눈앞에 둔 투수 앞에서 번트를 대서도 안 된다. 농구에서 크게 이기고 있는 팀은 종료 직전 작전시간을 불러선 안 되고, 축구에서는 부상 선수가 발생하면 곧바로 공을 사이드라인으로 차낸 뒤 경기가 속개되면 상대팀에 공격권을 넘겨줘야 한다. 복싱에선 뒤돌아선 상대 선수를 때려서는 안 되고, 사이클에서도 경쟁자가 사고를 당했거나 기기에 이상이 생겼을 때 가속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불문율을 어기면 강력한 응징이 따른다. 하루 200㎞가 넘는 거리를 달리는 도로사이클에서 선수들은 레이스 중간 적당한 장소에서 소변을 본다. 이때 레이스를 계속하는 선수가 가속하지 않는 것은 사이클 경기의 불문율. 그런데 과거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한 한 선수는 다른 선수들이 소변을 보는 것을 기다렸다가 가속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결국 그가 자신이 소변을 볼 때 다른 선수들이 그의 자전거를 먼 곳까지 끌고가 도랑에 처박아 버렸고, 그 선수는 사이클 세계에서 사라졌다.
2010년 5월, 국내 프로야구에서 있었던 일. 엘지(LG) 이대형이 크게 앞선 상황에서 두 차례나 도루를 감행했다. 기아(KIA) 투수 박경태는 네번째 타석에 선 이대형에게 네 차례 연속 몸쪽으로 위협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특히 네번째 공은 누가 봐도 빈볼임이 의심되는 투구였다. 불문율을 어긴 것을 빈볼로 응징한 것이다. 이종격투기 선수인 재일동포 추성훈(37)은 몸에 이물질을 바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어기고 오일을 바르고 경기에 나섰다가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불문율 때문에 애꿎은 스포츠 토토 팬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있다. 프로농구에서 크게 앞선 팀은 마지막 공격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2007년 12월 에스케이(SK)와 모비스의 경기에서 78-60으로 앞서던 에스케이 한 선수가 불문율을 어기고 종료 3초 전 2점슛을 넣어버렸다. 점수가 80점이 되면서 이 선수는 70점대에 걸었던 토토 팬들의 엄청난 항의에 시달렸다고 한다.
스포츠평론가 기영노씨는 “불문율을 모르면 스포츠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불문율의 실체를 알고 보면 스포츠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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