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스포츠
“뽑기를 잘해야 해. 뽑기를….”
프로농구 케이씨씨(KCC) 허재 감독이 술자리에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이다. 사실 농담이 아니다. ‘뽑기’는 팀 성적과 직결된다.
프로농구는 외국인선수, 혼혈선수, 신인 드래프트 등 유난히 ‘뽑기’가 많다. 허재 감독은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그는 티지(TG·현 동부) 플레잉코치 시절이던 2002~2003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주성을, 케이씨씨 사령탑에 오른 2008~2009 시즌엔 하승진을 품에 안았다. 이어 2009년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도 1순위로 토니 애킨스(전태풍)를 지명했다. 주변에선 “로또에 세 번 연속 당첨된 것과 다름없다”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지난 7일 오전 프로농구 동부 강동희 감독은 쾌재를 불렀고, 에스케이(SK) 문경은 감독은 참담한 좌절을 맛봤다. 혼혈선수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승준을 놓고 두 구단이 똑같이 상한액인 5억원(연봉 4억5000만원·인센티브 5000만원)을 제시했고, 급기야 ‘뽑기’를 했다. 추첨함에 손을 집어넣은 안준호 한국농구연맹(KBL) 경기이사의 선택은 ‘동부’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김정봉 농구연맹 홍보팀장은 “보는 이들은 흥미진진했지만 두 구단 당사자들은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초조해했다”고 전했다.
프로야구 서울 라이벌 엘지(LG)와 두산(당시 OB)은 1990년대 주사위로 희비가 엇갈리곤 했다. 당시 두 구단은 서울 연고지 신인 지명권을 놓고 주사위 두 개를 던져 합친 수가 많은 팀이 우선 지명권을 가졌다. 그런데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번번이 엘지가 이겼다. 엘지는 덕분에 91년 송구홍, 92년 임선동, 93년 이상훈, 94년 유지현, 95년 심재학을 쓸어갔다. 90년대 중후반 엘지의 전성시대는 주사위 덕분이었다.
한국 축구는 앞뒷면 선택하는 동전 던지기에 뼈아픈 추억이 있다. 2000년 2월 북중미 골든컵 조별리그에서 한국, 코스타리카, 캐나다는 모두 2무를 기록했다. 코스타리카가 다득점(4골)에서 앞서 1위로 올라갔고, 한국은 캐나다와 동전 던지기 끝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행운을 잡은 캐나다는 여세를 몰아 우승까지 차지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추첨이 딱 한번 등장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조별리그 F조에서 아일랜드와 네덜란드가 똑같이 3무를 기록했고, 골득실과 다득점까지 같아 추첨 끝에 아일랜드가 웃었다. 운명을 가르는 제비뽑기. 스포츠를 즐기는 또다른 재미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