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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학살한 수단 대표 못해” 무국적 출전

등록 2012-07-22 19:37수정 2012-07-22 22:03

구오르 마리알(28)
구오르 마리알(28)
올림픽
8살 소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뛰고 또 뛰었다. 총을 든 사람들을 벗어나려는 필사의 질주였다. 해 질 녘 발견한 동굴에서 밤을 새고 태양이 뜨자 비로소 자유의 빛을 봤다. 아프리카 수단의 내전으로 28명의 가족·친지를 잃고 납치된 뒤 공사장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탈출했다. 20년이 지났고, 장성한 소년은 다시 달릴 채비를 마쳤다. 살기 위해 뛰었지만, 지금은 희망을 위해 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수단 난민 출신의 구오르 마리알(28·사진)에게 무국적 올림픽 출전 자격을 주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22일(한국시각) 전했다. 마리알은 8살 때 수단을 도망쳐 이집트로 건너갔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현재 영주권자이기는 하지만 시민권자는 아니기 때문에 미국 마라톤 대표로는 뛸 수 없다. 지난해 7월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 대표로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새 회원국이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최소 2년이 지나야 한다는 올림픽위원회의 규정에 묶여 출전이 불가능했다.

올림픽위원회는 원래 국적이던 수단 대표로 출전을 권고했다. 하지만 마리알은 “내 가족을 죽인 국가를 대표할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올림픽위원회는 고심 끝에 마리알에게 ‘올림픽기를 들고’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고 허락했다. 그동안 동티모르(2000년 시드니), 유고슬라비아(1992년 바르셀로나) 등이 올림픽기를 들고 참가한 적이 있다. 선수 한 명이 예외를 인정받은 것은 마리알이 최초다.

마리알은 “비록 남수단 깃발을 들 수는 없어도 나는 남수단 사람이며, 남수단 그 자체다. 지금까지 고통받아온 남수단 사람들을 위해 뛰겠다”고 했다. 올림픽 남자 마라톤은 8월12일 열린다. 원래 크로스컨트리 선수였다가 마라토너로 전향한 마리알은 최근 2시간12분대의 성적을 냈다. 올림픽위원회 대변인은 “메달은 어렵지만 성적이 계속 좋아지고 있어 10~20위권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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