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뇌성마비) 1급의 정호원 선수(오른쪽)가 23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권철현 코치의 도움을 받아 2012 런던장애인올림픽(30일~9월10일)에 대비해 보치아 훈련을 하고 있다.이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런던 패럴림픽 2관왕 노리는 정호원
사고로 후천성 뇌성마비 1급
국내 최연소 국가대표 됐지만
생계에 쫓겨 한때 자포자기해
다시 운동 시작 ‘세계1위’ 우뚝
“코트는 내 꿈 펼칠 수 있는 곳”
자신보다 어려운 선수 후원도
사고로 후천성 뇌성마비 1급
국내 최연소 국가대표 됐지만
생계에 쫓겨 한때 자포자기해
다시 운동 시작 ‘세계1위’ 우뚝
“코트는 내 꿈 펼칠 수 있는 곳”
자신보다 어려운 선수 후원도
한평 남짓한 홍익회 매점. 엄마는 포대기에 싸여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엄마가 돌아왔을 때 역무원이 바닥에 떨어져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몸을 뒤척이며 옹알거리는 아기에게 우유병을 물렸다. 그런데 아기는 우유병을 번번이 놓쳤다. 손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엄마는 아기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병명은 후천성 뇌병변(뇌성마비). 매점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면서 뇌에 산소 공급이 일시중단됐던 것이다. 엄마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아기의 이름은 현재 보치아 세계랭킹 1위 정호원(26·속초시장애인체육회). 호원이는 남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충북의 지체장애특수학교 숭덕학교에 들어갔다. 경기도 가평 집에서는 멀었지만 학비가 싼 기숙학교였다. 9살 때 추석을 맞아 온 가족이 오랜만에 집에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그날 밤 호원은 아버지의 다급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온 집안이 화염에 휩싸였다. 천장까지 불이 붙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호원이는 뜨겁지 않았다. 어머니가 호원이를 온몸으로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등에는 숯덩이가 떨어졌다. 형도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어머니와 형은 몇 차례 수술과 피부이식 끝에 6개월 만에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화재와 병원비로 재산은 거덜이 났고, 아버지는 어느 날 자취를 감췄다.
호원이는 “오그라든 손과 비뚤어진 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0년, 숭덕학교 중등부 2학년 때 보치아를 접하면서 달라졌다. 자신의 의지대로 공을 굴릴 수 있었고 정확하게 표적구 옆에 붙였다. 뇌병변 1급으로 특히 언어장애가 심한 그는 “시… 신기했고, 보… 보치아가 조… 좋았다”고 어렵게 말을 뗐다.
2년 뒤인 2002년, 만 16살 때 국내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하지만 운동만 할 수는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연금이 보장되지 않는 때였다. 장애인 직업전문학교 문을 두드렸지만 그곳에서도 외면당했다. 암담했던 시기였다.
2005년 1월, 보치아를 가르쳤던 권철현 감독(39·현 대표팀 코치)은 한통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선생님. 저, 정말 죽고 싶어요.” 극단적인 행동을 염려한 권 감독은 호원을 찾아내 꽃다운 인생을 가까스로 살려냈다. 그때 정호원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서… 선생님… 저 다… 다시 우… 운동하면 아… 안 될까요?”
다시 태극마크를 단 호원은 2009년 아시아선수권, 2010년 세계선수권, 2011년 월드컵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개인전에선 동메달에 그쳤지만, 단체전은 1위를 했다. 그는 이번 런던장애인올림픽(30일~9월10일·한국시각)에서 한국의 유력한 2관왕 후보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개인전까지 제패하면 4년 주기로 열리는 5개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세계 최초의 보치아 선수가 된다.
넉넉하진 않지만 집안 형편은 나아졌다. 어머니는 홍익회 매점에 나가고 형은 주유소에서 일한다. 연금과 훈련수당도 받는다. 권철현 대표팀 코치는 “호원이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도 돕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호원은 “사회에선 장애가 있지만 코트에선 장애가 없다. 코트는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정호원의 맞수는 2년 전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자신을 물리친 대표팀 후배 김한수(20·세계랭킹 2위)다. 단체전에서는 최예진(21)이 합류한다. 정호원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개인전에서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겠다”며 웃었다. 24일 런던으로 떠난 정호원은 9월4일 단체전에 이어 9월9일 개인전에 출전한다.
정호원과 눈빛만 봐도 통하는 권 코치는 “승부근성이 강하고 경기 운영이 노련하다”며 “기복이 없어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천/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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