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맞수
8살 소녀는 뇌수막염 뒤 말을 잃어버렸다. 뇌는 3분의 1 정도만 남았고,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문 닫은 병원 앞에서 절망했던 엄마 김정숙(49)씨는 “그때 설 연휴만 아니었어도…”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녀는 아킬레스건이 짧아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중심을 잡는 데 좋다고 해 스케이트를 배웠고 지금 어엿한 국가대표가 됐다.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 이지혜(18·수원 율천고·사진 오른쪽)다.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한 현인아(15·서울 창동중·왼쪽)도 사연이 많다. 생후 8개월이 지나도록 웃지 않았고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30곳이 넘게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속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생후 28개월째 자폐 판정을 받아들자 엄마의 가슴은 무너졌다. 스케이팅을 시작한 초등학교 1학년 때도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갔다. 엄마 허영미(47)씨는 “얼굴도 예쁘고 발육이 좋은 아이가 저렇게 됐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5일 막을 내린 2013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지혜와 인아는 스타로 탄생했다. 지혜는 1000·1500m를 석권했고, 인아는 333·500·777m에서 정상에 올랐다. 기록도 좋다. 스페셜올림픽에선 실력이 비슷한 선수끼리 묶어 경쟁하지만 둘은 전체 선수를 통틀어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전명규 전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둘의 안정적인 자세와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면 전혀 장애를 느낄 수 없다”고 놀라워했다.
둘은 다정한 선후배이자 라이벌이다. 3살 위의 지혜는 뒤늦게 쇼트트랙을 시작했지만 무섭게 성장했다. 지난해 2월 겨울철 장애인전국체전 때 둘은 500m에서 정면 대결을 펼쳤고, 스케이트 날 하나 차이로 지혜가 이겼다. 지혜는 카카오톡에 ‘인아는 내 라이벌’이라고 써놓았다. 이번 스페셜올림픽에서 지혜 엄마와 인아 엄마는 나란히 두손을 모았다. 지혜 엄마는 “지혜가 발목과 무릎이 아파 6개월이나 훈련을 못했다”고 한숨지었고, 인아 엄마는 “지혜는 승부욕도 강하고 똑똑하지만 인아는 자기 판단을 잘 못한다”고 걱정했다.
둘은 나란히 세 종목씩 출전했고, 둘이 함께 출전한 777m에서 인아가 우승하면서 금메달을 하나 더 가져갔다. 대회가 끝난 뒤 지혜와 인아는 어깨동무를 했다. 인아는 어눌한 말투로 “지혜 언니 좋아요”라고 했고, 지혜는 “인아는 참 착한 동생”이라고 화답했다. 둘의 화사한 미소에 엄마들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강릉/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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