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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축구 노동자들

등록 2014-03-25 19:07수정 2014-03-25 22:10

아틀레티코 셀라야 선수들이 18일(한국시각) 경기에 앞서 종이봉투를 쓰고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소풋닷컴>
아틀레티코 셀라야 선수들이 18일(한국시각) 경기에 앞서 종이봉투를 쓰고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소풋닷컴>
멕시코·스페인 2·3부 축구팀
급여 계속 못받자 경기때 시위
NYT “경제위기 또다른 희생자”

레알·맨유 등 빅클럽만 호황
동유럽 선수 40% “체불 경험”
K리그도 스타 몸값 감당 못해
임금을 받지 못했지만 경기는 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종이봉투를 하나씩 쓰고 경기장에 나타났다. 멕시코 프로축구 2부리그 아틀레티코 셀라야 선수들이 둘러쓴 봉투엔 달러($) 그림과 “돈을 달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프랑스 축구 전문 매체 <소풋닷컴>은 “구단이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두달 동안 주급을 주지 못했고 선수들이 경기 전 포토타임에 항의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불황의 여파는 그라운드도 피해 가지 못한다. 사람들의 ‘여윳돈’으로 명맥이 유지되는 프로스포츠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뉴욕 타임스>는 24일(한국시각) 스페인 프로축구 3부리그 라싱 산탄데르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프로축구 선수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의 또다른 희생자”라고 보도했다.

1913년 창단한 라싱 산탄데르는 83번의 시즌 중 77시즌을 프리메라리가 1, 2부에 보낸 역사를 자랑하는 팀이었다. 리그 우승을 하진 않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도 1부리그에서 중위권 수준을 유지했다. 2010~2011 프리메라리가 20개 팀 중 12위였다. 그러다 2011년 인도 출신 사업가 아산 알리 시에드가 대주주가 된 뒤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애초 쌓여 있던 빚도 많았지만 때마침 글로벌 불황이 이어지면서 구단 재정은 더 악화됐다. 2011~2012 시즌 뒤 2부로 강등했고 이듬해 다시 3부리그로 떨어졌다.

하루 이틀씩 미뤄지던 주급이 한두 달이 지나도 지급되지 않은 일들이 반복됐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월 산탄데르를 떠난 수비수 아구스틴 페르난데스의 말을 빌려 “넉달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3살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해주지 못했다”고 전했다. 임금 문제가 전부는 아니었다. 구단은 새 시즌에도 새로운 유니폼을 지급하지 않았다. 구단 숙소의 가스가 끊겨 찬물로 샤워하는 일도 잦았다. 지난 12월 세비야 원정은 아홉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라싱 산탄데르 선수들이 지난 1월31일 경기를 거부하고 한줄로 서서 임금 체불에 항의하고 있는 모습. <시드니모닝헤럴드> 누리집 갈무리
라싱 산탄데르 선수들이 지난 1월31일 경기를 거부하고 한줄로 서서 임금 체불에 항의하고 있는 모습. <시드니모닝헤럴드> 누리집 갈무리

산탄데르 선수들은 1월31일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국왕컵 8강 2차전을 거부했다. 4일 전 임금 미지급에 항의하며 앙헬 라빈 구단주가 물러나지 않으면 경기를 거부하겠다고 한 결의문을 이행했다. 상대가 킥오프를 하자 중앙선 부근에 모인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심판은 1분 만에 경기를 취소했다. 라빈은 며칠 뒤 사임했다.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빅클럽’들의 호황의 그늘엔 이처럼 노동의 가치조차 제때 인정받지 못하는 가난한 구단의 선수들이 많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2011년 동유럽 12개국 3000여명의 프로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 중 41.4%가 임금을 제때 못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6개월 이상 밀린 경우도 5.5%나 됐다. 나라별로 보면 그리스리그 선수들이 70%, 크로아티아리그 선수들의 응답률이 60%를 넘었고 몬테네그로는 94%의 선수들이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세 나라 모두 2010년대 초반 글로벌 재정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동남부 유럽 국가들이다.

이탈리아 세리에A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최고 수준의 프로축구리그에서도 몇몇 부자구단을 제외한 많은 팀들이 선수들을 내보낸 만큼 데려오지 못해 전력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스페인 언론들은 지난해 여름 이적시장이 끝난 뒤, “프리메라리가 20개 구단이 5억유로(7400억원)에 가까운 이적료 수입을 거둘 정도로 영입하는 선수보다 방출하는 선수가 많다”며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제외하면 능력 있는 선수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프로축구인 K리그에서도 선수 유출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J리그에 이어 중국 슈퍼리그 구단들이 한국 선수들에 눈독을 들이면서 K리그 구단들이 몸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스타들의 중국행이 늘고 있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구단으로선 자유계약선수(FA)들에게 과감한 베팅도 하기 어렵다. 포항 스틸러스의 팬들은 22일 안방경기에서 “40년 명문구단 2년 만에 말아먹네”, “무턱대고 팔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나왔다. 지난 시즌 우승을 하고도 박성호, 노병준 등 자유계약선수들을 내보내고 외국인선수 영입을 포기한 구단 경영진을 향한 비난이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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