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청소년대회에서 김동현씨가 세팅한 코스에서 선수들이 예선전을 펼치고 있다. 김동현씨 블로그
스포츠클라이밍 코스 설계
국제 심사 자격 보유한 김동현씨
“너무 쉬워도, 어려워도 안돼
완등자 1명 나오게 만들어야
관중 몰입위해 아찔한 코스도…”
국제 심사 자격 보유한 김동현씨
“너무 쉬워도, 어려워도 안돼
완등자 1명 나오게 만들어야
관중 몰입위해 아찔한 코스도…”
“루트 세터는 스포츠클라이밍의 ‘시험 출제자’입니다. 선수들을 무작정 괴롭히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관중의 몰입과 호응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노력하죠.”
김동현(40·사진) 스포츠클라이밍 국제 ‘루트 세터’는 자신의 역할을 영화감독에 비유한다.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돋보여야 하듯 클라이밍 역시 선수가 돋보여야 한다. 루트 세터는 인공암벽에 홀드(인공 손잡이) 등 다양한 구조물을 배치해 클라이머들이 올라가는 코스를 설계한다. 김씨는 전세계에 4명밖에 없는 ‘국제 루트 세터’ 심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스피드와 볼더링, 리드 3종류가 있다. 스피드는 목표 지점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도달하는 경기로 특별히 루트 세터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줄 없이 5m 정도의 높이를 오르는 볼더링이나 줄을 끌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리드는 루트 세터가 필요하다.
그는 “루트 세터의 가장 큰 목표는 완등자가 1명만 나오게 하는 것이다. 루트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완등자가 1명도 없을 수 있고, 7~8명이 나올 수도 있다. 완등자가 없거나 같은 지점에 오른 선수들이 많으면 관중들이 실망하거나 흥미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같은 지점에 도달한 경우 시간을 따져 순위를 결정할 수 있지만, 관객들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적의 난이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 김씨는 “대회 출전자들의 기량과 수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국제대회 라이브방송을 보거나 유튜브에 뜬 동영상을 미리 살펴본다”고 말했다.
루트 세터는 자신에게 지정된 대회에 최소 일주일 전에 도착해 루트를 제작한다. 적절한 난이도를 위해 결승 코스부터 먼저 제작한 뒤 차례로 준결승과 예선을 준비한다. 테스트를 여러 차례 하다보면 힘이 떨어져 감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결승 코스의 난이도가 오히려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선과 준결승을 지켜보면서 선수들의 기량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결승 코스를 조정하기도 한다.
난이도 못지않게 선수들의 동작에도 신경써야 한다. 그는 “관중들은 선수들이 등반할 때 등만 보여주면 재미없어한다. 가끔은 아찔한 장면도 보여줘야 한다. 창의적인 코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선은 공개된 2개의 루트에서 선수들이 동시에 참가해 순위를 정한다. 준결승(26명)과 결승(8명)은 선수들을 격리해서 예선 성적의 역순으로 경기를 치른다.
김씨는 5월 말께 서울 구로디지털역 인근에 스포츠클라이밍센터를 개장할 예정이다. 공장을 임대해서 실내인데도 높이가 무려 6.8m에 이른다. 그는 “클라이밍의 가장 큰 매력은 수직상승의 쾌감을 만끽하는 것이다. 지금도 경기장이 2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하공간과 낮은 높이에서 못 벗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작은 공간에서는 홀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선수들이 주로 옆으로 이동하며 연습한다. 그는 스포츠 클라이밍 강국인 일본을 방문해 경기장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초보자나 몸무게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슬랩형(90도 이하)도 마련할 예정이다. 김씨는 “초보자들이 처음부터 너무 힘들면 쉽게 포기한다. 흥미를 가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코스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 lcy100@hani.co.kr
김동현씨.
김동현씨가 설계한 루트에 따라 홀드 등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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