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쇳말 놀이 ➌ 부상
부상은 한순간이다. 한순간에 선수 생명을 끝낼 수 있다. ‘캡틴’ 박지성이 이른 은퇴를 결심한 것도 부상 때문이었다. 스포츠 선수들은 오늘도 부상 위험을 무릅쓰고 경기에 나선다. 부상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스포츠부
프로야구 엔씨의 손시헌이 5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 3회초 공격에서 김종호의 내야 땅볼 때 3루에서 홈에 들어오다 롯데 포수 강민호에게 오른쪽 무릎을 부딪힌 뒤 쓰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어깨·발 부상도 각각 13.6% 달해
9개구단 66명 1군서 제외된 경험 지난 4일 가을야구를 향해 갈 길이 먼 두산은 청천벽력 같은 악재를 만났다. 선발투수진의 핵심인 더스틴 니퍼트가 등 근육통을 호소해 1군 명단에서 제외해야 했기 때문이다. 2군으로 내려가면 최소 10일 동안은 1군에 올라올 수 없다. 후반으로 치닫는 프로야구의 순위 경쟁에서 최대 변수는 부상이다. 한 시즌을 치루면서 선수들은 어떤 부위에 부상을 많이 당할까? 5일까지 9개 구단의 선수 가운데 부상으로 1군 명단에서 제외된 적이 있는 선수는 66명에 달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부상을 당한 곳은 손목을 포함한 손 부위다. 여섯팀 10명(15.2%)의 선수가 손을 다쳐 1군에서 말소됐다. 공을 던지는 투수의 손가락이 갈라지고, 방망이를 잡는 타자의 손목과 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건 흔한 일이지만 올 시즌엔 공에 맞아 손을 다치는 선수들이 많았다. 에스케이 투수 윤희상은 타자가 친 공에 급소를 맞은 데 이어 손까지 강타당하며 골절상을 입었다. 기아의 김주찬, 브렛 필과 한화의 김회성은 타석에서 투구에 맞아 뼈가 부러지거나 손톱이 뽑히는 큰 부상을 당했다. 공에 맞는 부상은 부위에 따라 심각성이 달라진다. 엉덩이 같이 살이 많은 부위에 맞으면 큰 부상을 입지 않지만 종아리 같이 활동량이 많은 부위는 공에 맞아 근육이 찢어지면 3~6주의 재활이 필요하다. 류현진(엘에이 다저스)과 오승환(한신 타이거스)의 팔꿈치 수술 뒤 재활을 도운 한경진 선수촌병원 재활원장은 “관절에 공을 맞는 게 가장 안 좋다. 출혈이 생겨 부으면 가동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뼈에 공을 맞아 생긴 멍은 3개월 이상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깨와 발(발목 포함)을 다친 선수들도 각각 13.6%에 달했다. 어깨는 주로 투수들이 다치는 부위로 알고 있지만 기아 외야수 신종길과 한화 내야수 오승택도 어깨 부상을 당했다. 어떤 포지션의 선수든 공을 던지는 동작을 하고, 경기 중 선수간의 충돌로 어깨를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 외야수 이용규와 두산 포수 최재훈도 지난해 어깨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어깨 부상의 경우 주로 회전근개라 불리는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건’ 부위가 주로 손상을 입는다. 건은 근육에 비해 딱딱하고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부위라 한번 부상을 입으면 3개월 이상의 재활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발 부상엔 다양한 원인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처럼 베이스를 잘못 밟아 다치기도 하고, 외야의 불규칙한 경기장 상태 때문에 발목이 접질릴 수도 있다. 훈련 중에 바닥에 깔린 공을 밟아 발목에 손상을 입기도 한다. 한화의 외야수 한상훈은 6월25일 뜬공을 잡다가 2루수 정근우와 충돌하며 발목을 접질러 인대가 늘어나 재활 중이다. 한 원장은 “뼈와 뼈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인대에 손상이 오면 통증이 오래 간다. 인대는 관절을 짱짱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격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충분한 재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몸통(12.1%), 허벅지(9.1%), 종아리(4.5%) 부상은 주로 근육이 손상되는 경우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가만히 서있다가 순간적으로 힘있게 움직이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근육 파열이 빈번히 일어난다. 투구, 타격, 주루, 수비 등 대부분의 동작에서 근육의 폭발적인 힘을 요구한다. 한 원장은 통증이 잦기 때문에 선수들이 근육통을 가볍게 생각해 부상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근육이 찢어져도 1주일 지나면 통증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뛰면 재발해 만성이 될 수 있어 초기에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엘지의 이병규는 5월26일 종아리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된 뒤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귀를 못하고 있다. 허리 부상으로 1군 명단에서 빠진 선수는 10.6%이지만, 많은 선수들이 만성 허리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투구를 하든 타격을 하든 허리가 하체의 힘을 상체로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원장은 “운동 선수에게 허리는 ‘파워존’”이라고 말했다. 파워존이 약해지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은퇴한 박찬호가 대형계약을 하며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을 때 부진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허리 부상이었다. 받은 돈 만큼 활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허리 통증을 안고 경기에 출전한 게 화근이었다. 올 시즌 초 맹활약하던 삼성의 에이스 장원삼도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24일 동안이나 1군 명단에서 빠진 바 있다. 올 시즌부터 주말 3연전에서 우천 취소된 경기가 월요일에 치러지는 것도 선수들의 부상을 늘리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일이 길어지고 계획되지 않은 날에 시합을 하게 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근육의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 원장은 “소위 말하는 햄스트링이 올라오는 부상은 근육이 피로해질 때 많이 나타난다. 여름철에 부상이 잦은 것도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경기를 똑같이 치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축구] 박지성도 이동국도 ‘무릎에 무릎’ 염증·십자인대 파열 등 많아
수술하면 선수생명 크게 줄어
봉와직염 등 발 부상도 잦아 전후반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야 하는 축구 선수들에게 무릎 부상은 가장 치명적이다. 한번 수술을 하고 나면 선수생명이 크게 줄어든다. ‘캡틴’ 박지성이 30대 초반의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이유도 무릎 수술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무릎을 지탱하는 근육이 일반인보다 2~3배 강한 선수들에게도 무릎 부상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2006년 당시 스물일곱이던 이동국은 독일월드컵 개막을 두달 앞두고 K리그 경기 도중 공을 쫓다 혼자 넘어졌다. 진단은 오른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이동국은 시간이 필요한 수술 대신 재활치료를 선택하고 독일로 떠났지만 결국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넓적다리뼈와 정강이뼈 사이에 있는 십자인대는 이름처럼 두 개의 인대가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다. 앞쪽 전방십자인대와 뒤쪽 후방십자인대로 나뉜다. 무릎관절이 앞뒤로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해주는 구실을 하는데, 빠르게 달리다 정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손상되기 쉽다. 축구 대표팀 주치의인 송준섭 박사(제이에스병원)는 “십자인대 파열은 허벅지 앞뒤 근력에 차이가 있거나 근육이 무릎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꾸준히 근력운동을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무릎 부근의 염증과 통증은 휴식 없는 과도한 운동 탓이 크다. 박지성은 선수생활 내내 무릎연골 부상에 시달렸다. 아마추어 시절 통증을 참고 휴식 없이 경기에 나선 게 원인이다. 2003년과 2007년 수술을 했지만 무릎에 물이 차고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부진했던 기성용은 무릎인대에 염증이 생기는 슬개건염을 앓았다. 슬개건염 역시 과도한 운동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무릎의 상태는 경기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선수들로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다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공과 직접 부딪치는 발에 찾아오는 부상도 잦다. 브라질월드컵 직전 박주영과 박주호가 앓았던 ‘봉와직염’이 대표적이다. 주로 발가락 부위가 붉게 달아오르며 붓고, 욱신욱신 쑤시는 통증에 열이 나기도 한다. 심해지면 고름도 나온다. 송준섭 박사는 “봉와직염은 피부의 균이 번식해 생기는 증상인데 면역력 약화가 주원인이다. 축구 선수들은 일반인보다 발이나 발가락이 훨씬 민감하고 공을 차면서 자극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뼈로 전이될 수도 있는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국내외 황당한 부상들] 엘지 박용택, 푸쉬업 하다 변기 무너져 손가락 골절 K리그 율리안, 배수구 발걸려 골절
MLB 주마야, 기타 치다 손목 염증 프로축구 포항은 지난 1999년 당시 K리그 사상 최고 몸값인 10억원을 지불하고 루마니아 특급 율리안을 영입했다. 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으나 율리안은 동대문운동장 트랙 옆 배수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골절상을 입고 말았다. 그의 기록은 7경기 출전 2차례 슈팅이 전부였다. 프로축구에서는 사우나에 들어가다가 발이 문에 껴서 부상(2001년 김동진)을 당하거나, 골을 넣고 점프를 했다가 다리에 쥐가 나면서 다친 사례(2008년 고종수)도 있었다. 프로야구에서는 올해 넥센 구원 투수 조상우가 비오는 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왼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지하철’ 하면 두산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맷 랜들도 빠질 수 없는데, 2009년 3월 랜들은 선릉 지하철 역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전치 6주의 허리 부상을 당했다. 넥센 마정길은 물걸레질을 한 식당 바닥에서 미끄러져 무릎 인대를 다쳤고, 박용택(LG)은 화장실에서 푸쉬업을 하다가 변기가 무너지며 손가락 골절상을 입은 적이 있다. 샤워실 접이식 의자에 손가락이 끼거나(2000년 김유봉) 승용차 문에 오른 새끼손가락이 낀(2001년 진갑용) 경우도 있었다. 외국 사례는 더욱 황당하다. 미프로야구 조엘 주마야는 200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기타를 너무 많이 쳐서 손목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월드시리즈를 망쳤다. 워싱턴 레드스킨스(미식축구)의 거스 프레로테는 1997년 터치다운 뒤 세리머니로 경기장 벽에 머리를 박았다가 그대로 기절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동료 선수에게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턱이 빠져버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키퍼(1975년 알렉스 스테프니)나 심판이 흔드는 깃발에 찔려 거의 실명 위기까지 몰렸던 미식축구 선수(1999년 올란도 브라운)도 있다. 1934년 한 골프 선수는 멋진 샷을 성공시킨 것을 자축하려고 골프 클럽을 하늘 위로 던졌다가 그대로 머리에 맞아 의식을 잃기도 했다. 1923년 미국프로야구에서는 자신의 틀니를 뒷주머니에 넣고 타석에 섰던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가 안타로 출루한 뒤 이를 까먹고 2루에서 슬라이딩을 했다가 틀니에 엉덩이가 물려 다치는 웃지 못할 사건도 벌어졌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스포츠 재활은 시간과의 싸움 잘될까 두려움이 가장 큰 적
재활 기간은 보통 1년 잡아 스포츠 선수의 재활은 지루하다. 단조로운 운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정신적 고통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에서 30년 가까이 재활을 담당한 강흠덕 트레이너는 “스포츠 재활은 재미도 없고 ‘재활이 잘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어서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재활 기간은 보통 1년으로 잡는다. 재활 시스템이 좋아져서 기간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강 트레이너는 “예전에는 손으로 기록만 했는데 지금은 컴퓨터 등 장비를 통해서 부상 부위가 좋아지고 있는 정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선수들도 단계적으로 회복되는 게 보이니까 답답함이 줄어든 편”이라고 밝혔다. 재활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했을 때는 재활 도중 70~80%가 선수 생활을 포기했으나 요즘에는 90% 정도가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에 다시 복귀하는 추세다. 야구에서 재활이 가장 어려운 부위는 야수의 경우 무릎이다. 전방 십자인대는 그나마 괜찮은데 후방 십자인대가 까다롭다. 재활 기간도 길 뿐만 아니라 자칫 민첩성과 순발력을 잃을 수 있다. 투수는 어깨 재활이 어렵다. 팔꿈치 인대 파열은 토미 존 서저리(인대 접합 수술) 등을 하면 5개월 뒤부터 공을 던질 수 있는데 어깨는 그렇지 않다. 한번 다치면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에 견갑골 안정화 운동 같은 예방 차원의 보강운동이 필수적이다. 강 트레이너는 투수들에게 매일 튜빙(고무줄 당기기)을 권하고 필라테스를 통한 허리 안정화 운동도 시키고 있다. 발목 부상은 웬만하면 수술이 아닌 재활을 권유한다. 인대도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한 수술보다는 재활이 낫다고 한다. 강흠덕 트레이너는 “토미 존 서저리를 하면 구속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는 수술 때문이 아니라 재활 과정에서 근력운동을 많이 해서 근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활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확실한 동기부여다. 해당 선수에게 단계별로 목표치를 정해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강 트레이너는 “임창용(삼성)은 수술 뒤 재활이 아주 잘된 케이스다. 목표의식이 뚜렷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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