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본선 한국-몽골 경기에서 한국의 양희종이 몽골 선수들과 공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 기로에 선 농구 대표팀
▶ ‘농구’라는 단어에 아직도 떠오르는 이름이 ‘현주엽’ ‘문경은’뿐인 당신은 당장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봐야 합니다. 16년 만의 월드컵 진출도 한낱 외국 축구 경기 중계에 밀리는 게 농구의 현주소입니다. 잃어버린 농구의 시대를 되찾기 위해 국가대표팀은 이를 앙다물고 있습니다. 세계 수준에 다시 근접해서 대중의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마음으로 뜁니다. 그리고 농구는 사실 재미있는 구기입니다. ‘농구학자’로 유명한 <점프볼>의 손대범 편집장이 왜 지금 농구를 봐야 하는지를 외칩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오랜 준비기간을 마치고 본격적인 금메달 사냥에 나섰다. 지난 5월19일,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우승을 목표로 진천선수촌에 입소한 뒤 127일 만이다. 진천에서 땀 흘려온 국가농구대표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국제대회에서의 계속된 부진에 맞물려 한국농구연맹(KBL)의 인기와 대중스포츠로서 차지하는 위상도 실추됐다. 대표선수들은 아시아경기대회 우승이 농구 인기 부활의 신호탄 구실을 해줄 것이라 믿어왔다. ‘긍지’와 ‘자부심’, 여기에 관심을 향한 ‘배고픔’까지 마음에 담은 채 4개월여를 버텨온 것이다.
대표팀이 소집된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오세아니아 대륙의 강호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통해 희망도 봤고, 16년 만에 진출한 국제농구연맹(FIBA·피바) 월드컵 무대에서는 한계에 부딪쳐 보기도 했다. 악재도 있었다. 대표팀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김민구(KCC)가 음주 후 교통사고로 하차했다. 김민구는 2013년 필리핀에서 열린 피바 아시아선수권대회 베스트5에 선발된 스타였다. 김민구와 함께 월드컵 진출을 견인한 이승준(동부)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못 뛰게 됐다. 이 가운데 유재학 감독은 ‘전원이 뛰는 수비 농구’로 아시아 강호들한테 도전장을 던졌다.
사상 처음으로 전력분석에 투자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역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3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 케이비엘 김영기 총재가 감독이던 1970년 방콕 대회에서 신동파와 김인건, 이인표, 유희형 등이 똘똘 뭉쳐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두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12년 뒤의 일이다. 현 대한농구협회 방열 회장이 사령탑을 맡은 가운데, 신선우와 이충희, 박수교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이 중국이라는 ‘거목’을 쓰러뜨리고 우승했다. 그 뒤 금메달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승 진출은 밥 먹듯 했지만 중국이 계속 앞을 가로막았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결승전도 비슷한 양상이 될 것 같았다. 적어도 4쿼터 종료 1분 전까지는 말이다. 4쿼터 종료 직전까지도 점수 차를 좁히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강력한 압박수비를 앞세워 기적과 같은 연장전 승리를 일구었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세번째 금메달 획득 순간이다. 김주성과 김승현은 이 대회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중국만 넘어야 했던 건 옛날
무섭게 전력 강화한 필리핀
기술과 힘, 전술 모두 우위인
이란은 한국과 우승을 다툰다
금메달까지는 가시밭길이다 파울로 끊기에 급급했던 수비
유재학 감독은 체질개선 시작
궁극적으론 전면강압수비로
이란의 218㎝ 하메드 하다디를
무력화할 비법도 연구하는 중 그 뒤로 12년이 지났다. 아시아경기대회에 나서는 대표팀의 목표는 금메달로 한결같았지만, 2006년(카타르 도하)과 2010년(중국 광저우) 대회를 치르는 사이에 아시아의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1990년대에는 ‘중국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필리핀과 일본이 위협하긴 했지만 ‘라이벌’로 분류하기에는 우리와의 실력 차이가 컸다. 그러나 이제는 아시아 판도를 말할 때 ‘중국도 넘어야 한다’라고 해야 한다. 중동 국가들의 기세가 등등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번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이란은 오히려 중국보다도 강한 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에 10대 선수들로 세대교체를 단행한 대만은 그 실력이 무르익고 있으며, 협회의 내분으로 국제농구연맹으로부터 국제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던 필리핀도 징계가 해제된 이후 무섭게 전력을 강화해 아시아가 아닌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란, 필리핀, 중국은 대한민국과 우승을 다툴 3강으로 꼽히고 있다. 218㎝의 하메드 하다디가 이끄는 이란은 오랜 세계경험 덕분에 기술과 힘, 전술 모두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필리핀은 야심차게 귀화한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안드레이 블래치가 귀화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해 불참한다. 블래치가 없다 해도 개인기와 탄력이 좋아 대한민국한테는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젊고 빨라졌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조차 우승을 놓치자 내린 특단의 조치다. 매너리즘에 빠진 고참 선수들을 모두 빼고 평균 연령 21.9살의 젊은 팀을 내놓았다. 전력은 여전히 강하다. 2미터가 넘는 장신 선수들도 많다. 평균 202㎝로, 한국(194㎝)보다 8㎝가 더 크다. 80~90년대 대표팀 주전 센터였던 김유택 중앙대학교 감독은 “중국은 우승을 놓친 다음해에는 어김없이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그때는 모두가 긴장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잔뜩 벼르고 나온 중국의 전력은 아직 100% 발휘되지 않은 상태. 일단, 24일 본선 첫 경기에서는 카자흐스탄을 76-59로 여유 있게 꺾고 만만치 않은 전력임을 입증했다. 한국 대표팀은 201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이겼으나, 이란과 필리핀에는 승리를 내준 바 있다. 필리핀은 4강에서 우리 대표팀을 떨어뜨렸고, 이란은 그런 필리핀을 이기면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와 비교해 두 팀 전력은 큰 차이가 없다. 금메달에 오르기까지 가시밭길 행보가 예상되는 이유다. 첫 경기서 몽골을 90-67로 대파했지만… 유재학 감독도 아시아의 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농구계도 넘어야 할 산이 중국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달라진 판세를 제대로 읽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우리가 내야 했던 수업료도 비쌌다. 그동안 케이비엘 농구는 외국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로 골밑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 평균 신장이 월등히 높아지고, 더 높이 더 빨리 달라진 아시아 농구에서 경쟁력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사이 한국 농구는 개인기는 줄고, 수비 일변도의 저득점 농구로 변해가면서 ‘대중성’을 잃어갔다. 시청률이 떨어지고, 농구를 하겠다는 청소년들도 줄어갔다. 이른바 ‘비인기종목’으로서 저변이 좁아진 것이다. 7~8년에 걸쳐 비싼 수업료를 냈던 만큼, 교육도 확실히 됐다. 대한농구협회와 케이비엘은 첫 돌파구를 국제대회에서 찾았다. 축구가 월드컵, 야구가 세계야구클래식(WBC)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의 바탕을 쌓은 것처럼,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재탈환함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대표팀 최고참으로 5번째 아시아경기대회에 나선 김주성(동부)도 이에 동의한다. “국제대회에서 잘해도 관심은 반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잠깐의 관심이라도 좋았다. 최선을 다해 관심을 얻고 싶었다. 이번에는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꼭 우승해서 부활의 초석을 깔고 싶다.” 김주성의 말처럼, 선수들도 ‘반드시 우승’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진천선수촌에 입성한 것이다. 협회 차원의 준비도 그만큼 철저해졌다. 사상 처음으로 ‘전력분석’에 투자했다. 이미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력분석팀을 고용해 상대를 파악해왔다. 우리 대표팀은 흔한 비디오조차 구할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고, 자료에 대한 공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프로농구 통역 출신의 한기윤씨를 전력분석원으로 고용해 각국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피바 월드컵은 대표팀의 유력한 경쟁자인 이란, 필리핀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씨는 월드컵 현장에서 대표팀과 떨어져 생활하며 이란과 필리핀을 쫓았다. 분석된 자료로 경기를 준비하는 건 코칭스태프의 몫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5월19일 첫 훈련부터 수비에 집중했다. 2013년의 경험을 토대로 대표팀의 수비법부터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동안 우리 선수들은 바꿔 막기, 즉 스크린에 걸려 큰 선수가 작은 선수를 막거나,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막게 됐을 때 반칙(파울)으로 끊기에 급급했다. 유재학 감독은 이에 대한 체질 개선부터 시작했다. 큰 선수와 작은 선수의 지속적인 일대일 대결을 통해 적응을 도운 것이다. 그는 “되도록 파울 없이 끝까지 따라붙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다른 팀들도 능숙하게 사용하는 수비”라며 말이다. 이는 유재학 감독이 구상한 수비의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 궁극적으로 그가 노린 것은 전면강압수비였다. 상대가 첫 패스를 건네는 순간부터 바싹 달라붙어 공의 전진을 막고자 하는 수비다. 농구 경기에서는 8초 이내에 중앙선을 넘어야 한다. 주어진 공격시간은 24초. 되도록 빨리 중앙선을 넘어야 하고자 하는 공격을 펼칠 수 있기에, 전면강압수비를 당하는 상대는 어떻게든 8초 이내에 넘어오려고 애를 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능숙하지 못한 팀들은 실책을 범한다. 중앙선을 제대로 넘어도 시간이 많이 지체된 탓에 공격이 정상적으로 안 돌아가는 결과를 낳는다. 또 궁극적으로는 계속해서 이런 수비를 당하다 보면 체력적으로도 지치게 된다. 그런데 이 수비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도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점이다. 이에 유재학 감독은 “12명이 모두 뛰는 농구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출전하든 큰 누수 없이 수비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체력도 완성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지쳤다고 생각할 시점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상대를 몰아붙일 것”이라고 청사진을 공개했다. 사실, 8월 스페인에서 열린 피바 월드컵에서는 감히 이 작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우리가 만난 상대들 모두 빠르고, 드리블에 도가 튼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무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 대표팀은 여러 형태의 지역방어도 준비했다. 특히 장신 선수 ‘하다디 효과’를 무력화할 만한 수비도 연구해왔다. 아무리 작전이 좋아도 선수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 유재학 감독은 대부분의 공격에 있어서는 꽉 짜인 모비스식 패턴 농구보다는, 개개인의 장점을 살리는 프리랜스 공격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선수들의 능동적이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가 대단히 중요하다. 한동안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의 연전연패로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7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무서운 3점슛 적중률을 보인 조성민도 몸이 무거웠다. 김종규도 연습경기 도중에 부상을 당한 뒤 주춤했다. 그러나 유재학 감독은 이 부분을 두고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시점’이 되면 선수들의 사기와 컨디션이 동시에 올라오리라 전망한 것이다. 대표팀은 9월24일, 127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몽골과 본선 리그 첫 경기를 벌였다. 최종 결과는 90-67. 점수 차만 보면 ‘압승’이지만, 경기 내내 몽골의 저돌적인 플레이에 진땀을 뺐다. 아직 경기 감각이 올라오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선수들도 경기 내용에 대해 낙담은 하지 않았다. “계속 경기를 하다 보면 좋아질 것”이라며 말이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요르단, 몽골과 함께 D조에 소속되어 있다. 본선 리그에서는 C, D, E, F조에 각각 3팀씩 모두 12팀이 경쟁하게 되는데, 각 조 1~2위 팀들은 다시 8강 리그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4강전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소 5경기는 벌여야 한다. 유재학 감독은 5일간 5경기를 치르다 보면 경기 감각이 충분히 올라오고, 이 과정에서 자신감도 회복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었다. 과연 ‘만수’의 이러한 계산이 적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가드 김선형, 슈터 조성민 등 기대 그렇다면 대표팀의 ‘해결사’는 누가 될까? 지난 5년간 대표팀이 가장 갈망했던 포지션은 센터가 아닌 가드였다. 상대팀 압박수비를 시원하게 뚫어줄 가드가 없어 전전긍긍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해결사가 등장했다. 바로 김선형(서울 SK)이다. 케이비엘 무대에서도 빠른 스피드와 탄력, 그리고 과감한 플레이로 인기몰이를 했던 김선형의 기량은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배짱 있게 장신 숲을 파고들었던 유일한 선수였다. 몽골전에서도 침체됐던 대표팀 분위기를 끌어주었다. 슈터 포지션에서는 조성민(부산 KT)을 주목해야 한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슛감이 떨어졌으나, 연전을 치르다 보면 다시 본연의 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승부처에서는 문태종(창원 LG)을 지켜보자. 귀화선수 신분으로 출전한 그는 케이비엘에서도 ‘한 방’이 필요할 때마다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왔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4쿼터의 사나이’다. 골밑을 지키는 김종규(창원 LG)와 이종현(고려대학교)의 성장도 눈에 띈다. 이번 대표팀이 소집된 이래 가장 실력이 좋아진 선수들이다. 두 선수는 월드컵 무대에서 엔비에이 소속 장신 선수들을 상대로도 돈 주고도 못할 과외를 받고 왔다. 덕분에 농구를 대하는 자세까지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코트 위에서 거친 몸싸움에 대응하는 노하우도 익혀 왔다.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농구 결승이 끝나고 정확히 일주일 뒤 2014~15 시즌 프로농구가 개막한다. 이 대회 성적은 시즌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월드컵 부진 때문에 실망한 대중의 신뢰도를 끌어올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대한민국이 노리는 금메달에는 단순한 메달 이상의 무게가 실려 있는 셈이다. 과연 유재학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이 12년 만의 금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무섭게 전력 강화한 필리핀
기술과 힘, 전술 모두 우위인
이란은 한국과 우승을 다툰다
금메달까지는 가시밭길이다 파울로 끊기에 급급했던 수비
유재학 감독은 체질개선 시작
궁극적으론 전면강압수비로
이란의 218㎝ 하메드 하다디를
무력화할 비법도 연구하는 중 그 뒤로 12년이 지났다. 아시아경기대회에 나서는 대표팀의 목표는 금메달로 한결같았지만, 2006년(카타르 도하)과 2010년(중국 광저우) 대회를 치르는 사이에 아시아의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1990년대에는 ‘중국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필리핀과 일본이 위협하긴 했지만 ‘라이벌’로 분류하기에는 우리와의 실력 차이가 컸다. 그러나 이제는 아시아 판도를 말할 때 ‘중국도 넘어야 한다’라고 해야 한다. 중동 국가들의 기세가 등등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번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이란은 오히려 중국보다도 강한 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에 10대 선수들로 세대교체를 단행한 대만은 그 실력이 무르익고 있으며, 협회의 내분으로 국제농구연맹으로부터 국제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던 필리핀도 징계가 해제된 이후 무섭게 전력을 강화해 아시아가 아닌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란, 필리핀, 중국은 대한민국과 우승을 다툴 3강으로 꼽히고 있다. 218㎝의 하메드 하다디가 이끄는 이란은 오랜 세계경험 덕분에 기술과 힘, 전술 모두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필리핀은 야심차게 귀화한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안드레이 블래치가 귀화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해 불참한다. 블래치가 없다 해도 개인기와 탄력이 좋아 대한민국한테는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젊고 빨라졌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조차 우승을 놓치자 내린 특단의 조치다. 매너리즘에 빠진 고참 선수들을 모두 빼고 평균 연령 21.9살의 젊은 팀을 내놓았다. 전력은 여전히 강하다. 2미터가 넘는 장신 선수들도 많다. 평균 202㎝로, 한국(194㎝)보다 8㎝가 더 크다. 80~90년대 대표팀 주전 센터였던 김유택 중앙대학교 감독은 “중국은 우승을 놓친 다음해에는 어김없이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그때는 모두가 긴장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잔뜩 벼르고 나온 중국의 전력은 아직 100% 발휘되지 않은 상태. 일단, 24일 본선 첫 경기에서는 카자흐스탄을 76-59로 여유 있게 꺾고 만만치 않은 전력임을 입증했다. 한국 대표팀은 201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이겼으나, 이란과 필리핀에는 승리를 내준 바 있다. 필리핀은 4강에서 우리 대표팀을 떨어뜨렸고, 이란은 그런 필리핀을 이기면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와 비교해 두 팀 전력은 큰 차이가 없다. 금메달에 오르기까지 가시밭길 행보가 예상되는 이유다. 첫 경기서 몽골을 90-67로 대파했지만… 유재학 감독도 아시아의 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농구계도 넘어야 할 산이 중국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달라진 판세를 제대로 읽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우리가 내야 했던 수업료도 비쌌다. 그동안 케이비엘 농구는 외국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로 골밑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 평균 신장이 월등히 높아지고, 더 높이 더 빨리 달라진 아시아 농구에서 경쟁력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사이 한국 농구는 개인기는 줄고, 수비 일변도의 저득점 농구로 변해가면서 ‘대중성’을 잃어갔다. 시청률이 떨어지고, 농구를 하겠다는 청소년들도 줄어갔다. 이른바 ‘비인기종목’으로서 저변이 좁아진 것이다. 7~8년에 걸쳐 비싼 수업료를 냈던 만큼, 교육도 확실히 됐다. 대한농구협회와 케이비엘은 첫 돌파구를 국제대회에서 찾았다. 축구가 월드컵, 야구가 세계야구클래식(WBC)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의 바탕을 쌓은 것처럼,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재탈환함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대표팀 최고참으로 5번째 아시아경기대회에 나선 김주성(동부)도 이에 동의한다. “국제대회에서 잘해도 관심은 반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잠깐의 관심이라도 좋았다. 최선을 다해 관심을 얻고 싶었다. 이번에는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꼭 우승해서 부활의 초석을 깔고 싶다.” 김주성의 말처럼, 선수들도 ‘반드시 우승’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진천선수촌에 입성한 것이다. 협회 차원의 준비도 그만큼 철저해졌다. 사상 처음으로 ‘전력분석’에 투자했다. 이미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력분석팀을 고용해 상대를 파악해왔다. 우리 대표팀은 흔한 비디오조차 구할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고, 자료에 대한 공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프로농구 통역 출신의 한기윤씨를 전력분석원으로 고용해 각국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피바 월드컵은 대표팀의 유력한 경쟁자인 이란, 필리핀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씨는 월드컵 현장에서 대표팀과 떨어져 생활하며 이란과 필리핀을 쫓았다. 분석된 자료로 경기를 준비하는 건 코칭스태프의 몫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5월19일 첫 훈련부터 수비에 집중했다. 2013년의 경험을 토대로 대표팀의 수비법부터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동안 우리 선수들은 바꿔 막기, 즉 스크린에 걸려 큰 선수가 작은 선수를 막거나,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막게 됐을 때 반칙(파울)으로 끊기에 급급했다. 유재학 감독은 이에 대한 체질 개선부터 시작했다. 큰 선수와 작은 선수의 지속적인 일대일 대결을 통해 적응을 도운 것이다. 그는 “되도록 파울 없이 끝까지 따라붙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다른 팀들도 능숙하게 사용하는 수비”라며 말이다. 이는 유재학 감독이 구상한 수비의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 궁극적으로 그가 노린 것은 전면강압수비였다. 상대가 첫 패스를 건네는 순간부터 바싹 달라붙어 공의 전진을 막고자 하는 수비다. 농구 경기에서는 8초 이내에 중앙선을 넘어야 한다. 주어진 공격시간은 24초. 되도록 빨리 중앙선을 넘어야 하고자 하는 공격을 펼칠 수 있기에, 전면강압수비를 당하는 상대는 어떻게든 8초 이내에 넘어오려고 애를 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능숙하지 못한 팀들은 실책을 범한다. 중앙선을 제대로 넘어도 시간이 많이 지체된 탓에 공격이 정상적으로 안 돌아가는 결과를 낳는다. 또 궁극적으로는 계속해서 이런 수비를 당하다 보면 체력적으로도 지치게 된다. 그런데 이 수비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도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점이다. 이에 유재학 감독은 “12명이 모두 뛰는 농구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출전하든 큰 누수 없이 수비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체력도 완성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지쳤다고 생각할 시점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상대를 몰아붙일 것”이라고 청사진을 공개했다. 사실, 8월 스페인에서 열린 피바 월드컵에서는 감히 이 작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우리가 만난 상대들 모두 빠르고, 드리블에 도가 튼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무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 대표팀은 여러 형태의 지역방어도 준비했다. 특히 장신 선수 ‘하다디 효과’를 무력화할 만한 수비도 연구해왔다. 아무리 작전이 좋아도 선수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 유재학 감독은 대부분의 공격에 있어서는 꽉 짜인 모비스식 패턴 농구보다는, 개개인의 장점을 살리는 프리랜스 공격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선수들의 능동적이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가 대단히 중요하다. 한동안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의 연전연패로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7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무서운 3점슛 적중률을 보인 조성민도 몸이 무거웠다. 김종규도 연습경기 도중에 부상을 당한 뒤 주춤했다. 그러나 유재학 감독은 이 부분을 두고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시점’이 되면 선수들의 사기와 컨디션이 동시에 올라오리라 전망한 것이다. 대표팀은 9월24일, 127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몽골과 본선 리그 첫 경기를 벌였다. 최종 결과는 90-67. 점수 차만 보면 ‘압승’이지만, 경기 내내 몽골의 저돌적인 플레이에 진땀을 뺐다. 아직 경기 감각이 올라오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선수들도 경기 내용에 대해 낙담은 하지 않았다. “계속 경기를 하다 보면 좋아질 것”이라며 말이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요르단, 몽골과 함께 D조에 소속되어 있다. 본선 리그에서는 C, D, E, F조에 각각 3팀씩 모두 12팀이 경쟁하게 되는데, 각 조 1~2위 팀들은 다시 8강 리그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4강전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소 5경기는 벌여야 한다. 유재학 감독은 5일간 5경기를 치르다 보면 경기 감각이 충분히 올라오고, 이 과정에서 자신감도 회복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었다. 과연 ‘만수’의 이러한 계산이 적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가드 김선형, 슈터 조성민 등 기대 그렇다면 대표팀의 ‘해결사’는 누가 될까? 지난 5년간 대표팀이 가장 갈망했던 포지션은 센터가 아닌 가드였다. 상대팀 압박수비를 시원하게 뚫어줄 가드가 없어 전전긍긍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해결사가 등장했다. 바로 김선형(서울 SK)이다. 케이비엘 무대에서도 빠른 스피드와 탄력, 그리고 과감한 플레이로 인기몰이를 했던 김선형의 기량은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배짱 있게 장신 숲을 파고들었던 유일한 선수였다. 몽골전에서도 침체됐던 대표팀 분위기를 끌어주었다. 슈터 포지션에서는 조성민(부산 KT)을 주목해야 한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슛감이 떨어졌으나, 연전을 치르다 보면 다시 본연의 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승부처에서는 문태종(창원 LG)을 지켜보자. 귀화선수 신분으로 출전한 그는 케이비엘에서도 ‘한 방’이 필요할 때마다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왔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4쿼터의 사나이’다. 골밑을 지키는 김종규(창원 LG)와 이종현(고려대학교)의 성장도 눈에 띈다. 이번 대표팀이 소집된 이래 가장 실력이 좋아진 선수들이다. 두 선수는 월드컵 무대에서 엔비에이 소속 장신 선수들을 상대로도 돈 주고도 못할 과외를 받고 왔다. 덕분에 농구를 대하는 자세까지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코트 위에서 거친 몸싸움에 대응하는 노하우도 익혀 왔다.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농구 결승이 끝나고 정확히 일주일 뒤 2014~15 시즌 프로농구가 개막한다. 이 대회 성적은 시즌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월드컵 부진 때문에 실망한 대중의 신뢰도를 끌어올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대한민국이 노리는 금메달에는 단순한 메달 이상의 무게가 실려 있는 셈이다. 과연 유재학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이 12년 만의 금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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