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속에 선수의 마음이 있죠.” 13년간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단과 국가대표팀의 장비 매니저를 맡아온 천진영씨는 이 직종 국내 1호다. 가방 속에는 높이가 다른 리벳부터 30㎏의 샤프닝머신까지 수백가지의 부품이 가득하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비상사태 때 대처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2㎜ 폭의 스케이트 날 양쪽에 각을 만들어 주는 샤프닝머신이다. “24명 선수들마다 홈을 파는 선호가 다르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요구하는 게 다르다.” 딱 찍어서 선 뒤 민첩하게 반대쪽으로도 움직여야 하는 골리는 깊게 파는 편이고, 속도가 필요한 공격수들은 조금 얇게 판다. 홈의 깊이는 3/8, 1/2, 5/8, 3/4인치 차례인데, 많이 팔수록 제동성은 좋지만 힘이 든다. 날을 갈 때는 연마기도 좋아야 하지만 손의 감각이 절대적이다. “수비수는 얼음판에 닿는 스케이트 날 부분이 7~9㎝이고, 공격수는 5㎝로 짧다. 여기에 날의 전 부분에서 기울어짐이 없이 평형을 맞춰야 한다.” 워낙 민감한 게 날이어서 라커룸에서 링크까지 가는 통로는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모래라도 밟으면 경기력에 영향을 받는다.
천진영 한라 아이스하키 장비 매니저가 24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32㎏짜리 리베팅머을 보여주고 있다.
스케이트 날과 날을 지탱해주는 홀더, 부츠로 구성된 스케이트화를 손보기 위해서 32㎏의 리베팅머신도 필수다. 부츠 앞쪽 바닥에는 짧은 리벳을 박고 뒤쪽으로 갈수록 큰 것을 끼운다. 자칫 치수를 잘못 맞추면 너덜너덜해진다. 부츠의 끈과 구멍도 수시로 손상을 입기 때문에 리벳 작업이 많다. 선수들이 쓰는 스틱도 신장에 맞춰서 자르거나 늘리기 위해서 목재 절단기를 라커룸 옆 장비실에 설치해놨다. “퍽을 잡거나 치는 스틱의 날은 휜 각도에 따라 1~21번까지 제품이 다른데 그런 점까지 고려해 스틱을 조정해준다.” 헬멧은 크게 손볼 것은 없지만 앞에 씌우는 고글을 탈·부착하고 때로는 강하게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장비 매니저의 손이 필요하다.
스케이트 날의 홈을 팔 때는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동호인들은 새로운 장비를 좋아하지만 프로 선수들은 다르다. “선수들은 쓰던 물품이 낡아도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갑이 튿어지면 재봉틀로 박아주고, 복숭아뼈가 아프다면 부츠의 안쪽 부분을 온열기로 가열한 뒤 깊게 눌러 공간을 만들어준다. 외국의 경우 2~3인의 보조 매니저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천 매니저 혼자 다 해야 한다. 원정 때는 여분의 날과 홀더, 스틱 등을 챙겨야 하는데 선수단 장비 무게만 총 1t이 넘고, 수하물 한도 초과로 인한 왕복항공료 부담도 수백만원에 이른다. 수시로 얼음에 젖는 부츠를 말리기 위해 여러 개의 헤어드라이어를 직접 개조해서 들고 간다.
장갑 등 선수들의 소모품은 재봉틀로 꿰메어주는 경우도 많다.
장비 매니저는 경기 때 감독과 함께 선수단 벤치에 앉는다. 선수들의 스케이팅 상태를 확인하고 즉시 날을 바꿔줘야 한다. 라커룸 등에서 선수들과 가장 많이 접촉해 감독보다 선수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감독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핀란드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장비 매니저 캠프에도 국내 최초로 참가해 3주간 교육을 받는 등 국제 감각도 높이고 있다. 천진영 매니저는 “장비를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구단, 감독, 트레이너, 팀 닥터, 심지어 작전까지 포괄적인 관계 속에서 내 역할을 찾고 있다”고 했다.
글·사진 안양/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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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벳과 각종 플라스틱 고리 등 부품도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