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부터 유럽팀을 잇달아 꺾으며 대회 최대의 돌풍을 일으켰던 한국팀 선수들이 팔을 벌린 채 마주 달리며 환호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자 정부는 병역특례 혜택을 줬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8일 오후 6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2-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호주-아랍에미리트 전 승자팀과 우승을 다투게 됐습니다. 한국 축구팀이 우승하면 55년 만의 우승이 됩니다.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1승은 1954년 스위스월드컵 참가 이후 48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그러니 연도만 따진다면, 한국 축구팀에선 아시안컵 우승이 월드컵 1승보다 더 어렵다는 단순 결론도 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우승을 향한 기대가 높아져 있는 상황인데요.
성적이 좋게 나올수록 축구팀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늘 함께 화제에 오르곤 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무실점 전승 행진을 벌이고 있는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우승을 하게 되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처럼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부 수립 이후 운동선수 병역특례의 역사를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 올림픽 동메달 이상·아시안게임 금메달뿐
현행 병역법상 운동선수가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 중 하나 이상을 따거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때만 입니다. 단체 경기의 경우 실제 출전한 선수만 혜택을 줍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축구 국가대표팀이 일본과의 3·4위 결정전에서 2대0으로 앞선 후반 44분, 당시까지 한게임도 뛰지 못한 김기희 선수를 출전시켜 4분간 뛰게 해 병역 특례 혜택을 받게 한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1분 이병 - 2분 일병 - 3분 상병 - 4분 병장 - 경기종료 전역’이라는 우스개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 전두환 정권이 주도한 운동선수 병역 특례
운동선수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기 시작한 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4월부터입니다. 당시 정부는 ‘병역 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각종 병역 특례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때 ‘학술·예술 또는 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 중 국가이익을 위하여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를 필요로 한다고 인정되어 특기자선발위원회가 선발한 자’를 보충역에 편입시키도록 길을 터줬습니다. 사실상 현역병 징집을 면제시켜준 것이죠. 선발기준은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된 특기자선발위원회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도록 했습니다.
8년이 지난 1981년 3월,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은 체능 특기자 병역특례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수선수로서 경기력이 절정에 다다른 국가대표선수들이 군복무를 하느라 경기력 향상에 손해를 본다”는 게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었습니다. 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당시 전두환 정권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1981년 9월 올림픽 유치를 확정지었습니다.
1981년 11월 관련법 시행령에 ‘운동선수 병역특례’ 기준이 자세히 규정되면서 병역특례 제도가 본격 시행됐습니다. 특히 미래의 운동 꿈나무인 한국체대 졸업생들에게도 병역특례 혜택을 줬습니다. 당시 국가적 분위기를 짐작케합니다. 이때도 단체 경기의 경우 실제로 경기에 출전한 선수에게만 병역 특례 혜택을 줬습니다.
△세계올림픽대회·세계선수권대회(청소년대회 포함)·유니버시아드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청소년대회 포함)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자
△한국체육대학 졸업자 중 성적이 졸업인원 상위 10%에 해당하는 자
이렇게 기준이 세세히 규정되기 전까지 1973년 제정된 법령은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습니다. 운동선수로서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사람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살려낸 운동선수 병역특례 혜택은 1984년 9월 아시아 신기록 작성자를 포함하고 대신 아시아권대회 1위 입상자만 대상으로 삼는 등 미세조정을 거칩니다. 1984년 9월22일 시행된 병역법 시행령 내용입니다.
△올림픽대회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자(단체경기종목은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유니버시아드대회 및 아시아경기대회와 예선대회를 포함하여 15개국 이상이 참가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입상한 자(단체경기종목은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이들 대회에서 아시아 기록을 수립한 자
△한국체육대학의 당해연도 졸업자로서 그 성적(실기성적을 포함한다)이 상위 100분의 10 이내에 해당하는 자
■ 월드컵·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원칙 흔들
현행 법률처럼 올림픽대회 3위 이상 또는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것으로 틀이 잡힌 건 1990년 4월부터입니다. 병역 특례 폭이 좁아지자 정부는 1999년 2월 우수 선수들에게 입영연기 권한을 줬습니다. 대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들은 27살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단체에 선수로 등록된 사람으로서 대한체육회장이 추천한 국가대표선수
△국내 전국대회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선수 또는 국위선양에 현저한 공이 있는 선수로서 문화관광부장관이 추천한 사람
기본틀이 크게 흔들린 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입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자 정부는 ‘월드컵축구대회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을 손봤습니다.
한번 무너진 원칙은 계속 흔들렸습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이 일본을 두 번 꺾고 6전 전승으로 4강에 진출하자 바로 다음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국방부는 야구 대표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를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해 9월 병역법 시행령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World Baseball Classic)대회에서 4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이 추가돼 대표선수들에게 소급적용됐습니다.
축구와 야구에 예외적으로 줬던 ‘특혜’는 거센 여론의 비난 때문에 오래갈 수 없었습니다. 2007년 12월28일 월드컵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관련 조항은 병역법 시행령에서 삭제됐습니다.
최근 스포츠 스타들의 해외진출이 늘면서 병역 문제는 이들에게 선수생명을 건 첨예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때 축구 유망주들 사이에선 ‘중학교 중퇴 후 축구 유학’이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인 이청용 선수도 중학교를 중퇴해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프로골퍼로 활동중인 배상문(29·캘러웨이) 선수가 군입대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하고 병무청이 거절하면서 운동선수 군입대 문제가 다시 한번 화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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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들에게 적용되는 병역특례 제도, 늘려야 할까요 줄여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