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 친절한 기자들]
다시금 ‘승부 조작’ 파문이 프로농구계를 덮쳤습니다. 의혹의 대상은 올해의 감독상을 5번 수상하고, 정규리그에서 4번 우승한 명장 전창진 안양KGC인삼공사 감독입니다. 전 감독은 자신의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프로농구연맹은 지난 악몽이 떠올랐는지 논란이 불거진 26일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습니다.
악몽은 바로 2013년에 알려진 강동희 전 원주동부 감독의 승부 조작 파문입니다. 강 전 감독도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의정부지법은 2013년 8월 강 전 감독에게 징역 10월과 추징금 47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왜 강 전 감독이 승부조작을 했다고 판단했을까요. 판결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6강이 정해진 2~3월 경기를 노렸다
우선 강 전 감독이 승부 조작 의혹을 받는 경기는 2011년 2월말부터 3월로 이어지는 총 네 경기입니다. 전창진 감독이 의혹을 받는 시기는 2013년 2월말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 다섯 경기죠.
연도는 다르지만, 2~3월에 집중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팀이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팀은 남은 경기에 주전 선수들을 아끼려 할 것이고, 탈락이 확정된 팀은 다음 시즌을 위해서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감독으로선 평소와는 다른 경기 운영을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시기입니다.
판결문에 나오는 강 전 감독의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동부 원주는 4위를 확정한 상태여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후보 선수들을 주로 내보내겠다고 이미 언론에 공표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강 전 감독의 주장입니다. 전 감독도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돼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 했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 “1쿼터만 져달라” 제안, 700만원에 수락
판결문에는 ‘인정 사실’이란 것이 있습니다. 재판의 당사자들이 각자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법원이 인정한 사실을 의미하는데요. 이 인정 사실에는 강 전 감독이 처음 승부 조작을 제안받는 상황이 자세히 나옵니다.
불법 스포츠도박으로 돈을 잃은 김아무개씨는 2010년 12월에 지인 조아무개씨에게 프로농구 승부 조작에 가담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합니다. 조씨는 최아무개씨를 김씨에게 소개해줬고, 최씨와 친분이 있는 인물이 강 전 감독이었습니다. 이 넷은 2011년 2월 판교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강 전 감독에게 “많은 농구선수들이 승부 조작을 하고 있다”, “승패에 지장이 없으면 승부 조작을 해도 부담이 없다”, “지는 경기를 해주면 1경기당 1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그 자리에서 강 전 감독은 거절합니다.
이 식사 자리 이후 김씨는 조금 수위를 낮춘 제안을 합니다. 바로 “1경기 전체를 (조작)하는 것이 어려우면, 1쿼터만이라도 지는 쪽으로 해보자. 상대팀 전력이 약하니 1쿼터를 져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지 않냐. 그렇게 하면 1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입니다. 이 제안을 전달한 사람은 강 전 감독이 ‘경기 전체는 어렵지만, 1쿼터는 한번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진술합니다. 강 전 감독의 법정 진술은 “그러면 1쿼터에 한번 뛰어보겠다고 얘기한 것 같다”입니다.
두 진술이 약간 다르나, 결국 ‘한 쿼터의 승부를 조작하는 것’은 강 전 감독이 받아들인 셈입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합법 스포츠 토토는 경기당 승패 정도에만 베팅을 할 수 있는데 반해, 불법 스포츠도박은 쿼터별 승부, 선수 간 대결 등 다양한 형태의 베팅이 가능하죠. 실제 2011년 2월26일 원주동부와 서울SK의 경기에서 강 전 감독은 1쿼터에 후보 선수를 네 명이나 출전시킵니다.
이후 3건의 승부 조작 의혹에 대해 강 전 감독은 전면 부인합니다. 강 전 감독의 입장은 “후보 선수들이 출장하는지 여부를 물어왔고, 언론에 공표한 대로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돈은 우연히 경기가 패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것으로 알고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씨나 전달자 최씨는 강 전 감독이 승부조작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진술합니다.
■ 최하위팀에 21점차 대패
실제 경기는 어땠을까요. 원주동부는 2011년 3월9일 고양오리온스를 상대로 김주성, 황진원 등 주전 3명을 아예 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외국인 선수 벤슨도 단 11분 뛰었죠. 경기 결과는 그해 최하위였던 오리온스에게 21점차 대패였습니다. 다음 경기인 3월13일 부산KT와의 경기에선 주전 선수들이 1, 2쿼터를 뛰었지만 3, 4쿼터엔 주로 후보 선수들을 내보냈습니다. 특히 상대 센터와 확연히 신장 차이가 나는 후보 센터를 내보내 3쿼터에 상대 센터에게만 연속 9득점을 허용합니다. 결과는 20점차 대패. 3월19일 모비스와의 경기에서도 주전 김주성이 출전하지 않았고, 다른 주전 선수들도 한명을 제외하면 11~13분 남짓 뛰었을 뿐입니다. 결과는 4점차 패배.
■ 조폭 동원해 입단속?
판결문의 ‘그 밖의 정황’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강 전 감독의 지인인 조직폭력배 김아무개씨는 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진 이후인 2011년 12월께 최씨와 조씨를 만나 “그런 얘기(승부 조작)를 하지 마라. 자꾸 그러면 혼난다”, “절대 네 입에서 강동희의 이름이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수 시절 허를 찌르는 패스와 능숙한 경기 운영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강동희 전 감독은 그렇게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농구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맡는 팀마다 우승컵을 안겼던 전창진 감독은 어떻게 될까요. 전 감독이 26일 변호사를 통해 낸 보도자료를 보면, 그가 호형호제하는 강아무개씨의 부탁으로 사채업자에게 3억원을 빌려 강씨의 차명계좌에 송금을 해줬고 이 돈이 당시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던 부산KT 경기에 베팅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전 감독은 강씨가 사업자금이 급하다고 찾아와 빌려준 것이고, 강씨가 불법 도박을 하는 줄은 전혀 몰랐다는 입장입니다.
(▶ 바로가기: 전창진 보도자료 전문)
하지만 전 감독이 왜 차명계좌를 이용했는지, 그리고 그 돈이 왜 하필이면 부산KT 경기에 베팅됐는지는 더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