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를 추진중인 케냐의 세계적인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가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안녕하십니까. 한국 이름 오주한입니다.”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7)가 23일 입국했다. 에루페는 입국장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네차례 참가했지만, 이렇게 한국을 찾으니 기쁘고 떨린다”며 “귀화 절차를 잘 마무리하고 한국 대표로 2016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소감을 밝혔다. 에루페는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고 훈련하면서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에루페의 한국 이름 주한은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이고, 성은 대리인인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의 성을 땄다.
에루페는 25일 충남 청양군청에서 입단식을 한다. 에루페는 오창석 교수를 통해 청양군체육회와 18개월 동안 6000만원을 받기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에루페는 27일 다시 케냐로 돌아간 뒤 10월 경주마라톤대회 참가를 위해 재입국해 본격적으로 귀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오 교수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문의해보니 1년 동안 급여를 받은 기록이 있고, 올림픽대표 선발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국적을 취득하면 올림픽 출전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에루페는 2011년 10월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9분23초로 정상에 올랐고,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5분37초로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 또 올해 3월에는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6분11초로 우승했다.
에루페의 귀화와 국가대표 발탁 여부를 놓고 육상계에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침체된 마라톤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마라톤 유망주의 싹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오 교수는 “에루페의 귀화는 한국 마라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3년 안에 2시간9분대에 들어가는 한국 선수를 키워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마라톤은 이봉주가 2000년 도쿄마라톤대회에서 세운 기록 2시간7분20초가 깨지지 않고 있다. 2011년 정진혁(2시간9분28초) 이후로는 2시간10분 내로 진입한 선수도 없다. 일선에서 마라톤팀을 지도하는 한 감독은 “귀화해서 올림픽 메달을 딴다는 의미보다는, 좋은 선수가 함께 훈련하면서 침체된 한국 마라톤의 새로운 붐을 일으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또다른 마라톤팀 감독은 “에루페가 귀화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면 이제 우리 선수들은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포기해야 한다”며 “이기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하지만 애초 실력이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명이 귀화하면 더 많은 선수들이 들어올 것이다. 단거리 종목에서 자메이카 선수가 귀화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당장 귀화를 허용하기보다는 1~2년 동안 국내 대회 중 일부 대회에만 자격을 부여하는 등 시간을 갖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육상연맹으로부터 도핑 관련 징계를 받은 경력도 2016년 리우올림픽 대표 발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에루페는 2012년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으로 자격정지 2년 징계를 받고 2015년 1월에야 복귀했다. 체육회 대표 선발규정에는 “징계 해지 이후 3년이 지나야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고 돼 있다.
인천공항/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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