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원이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비블럭어반클라이밍짐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인기 종목은 아니었지만 그저 재능을 보고 시작했다. 적성에 맞아서 성인대회 출전 2년 만인 2015년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다. 올해 8월에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스포츠클라이밍 볼더링 국내 1인자인 천종원(21·단국대). 그는 “은퇴할 때까지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올림픽 종목이 되면서 스포츠클라이밍 첫 금메달이라는 또다른 목표가 생겼다.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밝혔다. 개인훈련 중인 천종원을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포츠클라이밍센터에서 만났다.
암벽등반을 인공시설물을 이용해 즐기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종목은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지정했지만, 리드·스피드·볼더링 등 3개 부문 중 어떤 종목이 채택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이 볼더링에서 강세를 보여 이 부문이 정식종목이 될 가능성은 높다. 일본의 나라사키 도모아(20)와 후지이 고코로(23)가 올해 볼더링에서 각각 세계 1, 2위에 올라 있다. 천종원은 러시아 선수에 이어 4위다. 반면, 리드와 스피드 부문은 남자의 경우 유럽과 캐나다가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볼더링은 5m 안팎의 높이에 안전매트를 깔고 로프 없이 등반하며, 리드(가장 높이 오르는 종목)와 스피드(가장 빨리 오르는 종목)는 15m 안팎으로 로프로 안전을 확보하고 등반한다. 그만큼 지구력 등 체력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된다.
천종원은 하루 5~6시간씩 이틀 훈련한 뒤 하루 쉬는 패턴으로 금메달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이 정도는 훈련해야 스스로를 믿고 경기에 임할 수 있다”며 “종목 자체가 정직한 운동이라서 조금만 훈련을 안 하면 그대로 성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국내 스포츠클라이밍은 역사가 짧은 만큼 선수들은 체계적인 훈련과 스케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스포츠클라이밍 코치나 감독이 없기 때문이다. 천종원(아디다스 클라이밍팀)을 비롯해 일부 상위권 선수들은 스폰서를 두고 있지만 평소 훈련과 대회 참가는 혼자서 해야 한다.
그는 이날 후배들과 훈련을 함께 하며 지루함을 덜었다. 잡을 수 있는 몇 개의 홀더를 지정해주면 그 홀더만을 이용해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세와 방법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진다.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인 만큼 몸무게 유지도 매우 중요하다. 천종원의 키는 175㎝이지만 몸무게는 53㎏에 불과하다. 그는 몸무게 유지 비결에 대해 “그저 적게 먹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학 3학년이지만 술을 하지 않을 만큼 철저하고 꾸준한 몸관리가 그의 현재를 있게 한 비결이다.
천종원은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잠시 하다 말았으나 그의 재능을 기억한 어머니가 중3 때 아예 전문선수로 키울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그는 볼더링으로 종목을 교체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포츠클라이밍에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리드 부문 선수로 활동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다. 주변의 권유로 볼더링으로 전향한 뒤 나간 첫 월드컵에서 7등을 했고, 이후 성적이 좋았다. 적성도 맞고 성적도 나오면서 여러모로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천종원은 볼더링은 리드·스피드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볼더링에서 중요한 것은 감이다. 홀드를 잡는 감, 경기에 대한 감을 잘 찾으면 자신감이 붙고 경기가 슬슬 풀린다.” 볼더링은 순간 판단 등이 중요하다 보니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 5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회에서 천종원은 나라사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는데, 8월 독일 뮌헨 대회에서는 나라사키가 천종원을 따돌렸다. 반면 5월 뭄바이 대회 때는 후지이가 1위였다.
천종원은 아직 스포츠클라이밍 인지도가 낮은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접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종목 자체가 커질 수 있고 인기 종목이 될 수 있다”며 “이 종목 선구자라는 자세로 계속 세계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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