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동안 대구시청 여자핸드볼팀을 이끌어온 뒤 올해 정년을 맞아 은퇴하는 이재영 감독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내 스포츠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 팀을 지도한 이재영(60) 대구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이 올해 말을 끝으로 현장을 떠난다. 33살이던 1988년 대구시청을 맡아 올해까지 각종 대회에서 30여 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명감독이다. 특히 1994~2006년에는 각종 핸드볼대회에서 우승하거나 결승에 진출하며 팀을 여자핸드볼 최강팀으로 군림하게 했다. 안타깝게도 대한핸드볼협회 공식기록은 없지만, 감독 부문 최다출전·최다승 등은 모두 이 감독의 몫임이 틀림없다.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으로 임명돼 첫 이사회에 참석한 이 감독을 지난 1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선수생활을 은퇴했는데 지금까지 핸드볼과 인연을 맺으며 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팀을 유지하고 맡겨준 대구시청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이 감독은 부산 동아고를 나와 경북대에 진학했지만 선수로서 더이상 비전은 없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운영했지만 실업팀은 전혀 없었다.
핸드볼과의 인연은 뜻밖에도 군대에서 이어졌다. 일반병으로 군에 입대한 이 감독은 제대를 6개월 정도 남겨두고 군부대 인근 학교의 핸드볼 코치를 맡게 됐다. “당시에 전국적으로 소년체전 열풍이 불어 군인 중에서 지도자로 차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군부대 인근 지역인 충북 증평중학교에서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한 이 감독은 이후 경주여고 코치를 지냈고, 1988년 대구시청 감독을 맡은 이후 대구시청 핸드볼팀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 감독은 1988 서울올림픽 이후 핸드볼계의 시대적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 이 감독은 “우리 선수 시절에는 맞기도 하고 했지만 요즘은 강압적으로 해서는 오래 못 간다”며 “본인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선수들은 예전처럼 투철한 직업의식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면서 “체격과 자질 등은 나쁘지 않은 만큼 스스로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기량 발전도 잘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요즘은 실업 1~2년차들이 선수생활을 그만두겠다는 경우가 많아 설득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이 감독은 “대학 등에 진학하는 동기들과 달리 엄격한 선후배 관계 속에 합숙훈련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3~4년 차가 돼서야 마음도 다잡고 재미도 붙여 안정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핸드볼 큰잔치 원년(1988~1989년)을 꼽았다. 감독을 맡은 첫해에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데다 당시 국민들의 관심도 최고조였다고 이 감독은 기억하고 있다. 2014년 기술위원장 겸 단장으로 참가한 세계주니어핸드볼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이 감독의 즐거운 회상이다. 가장 아픈 기억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이었다. 이 감독은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이 대회에서는 4강전에서 일본에 패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이후 여자핸드볼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유일한 대회였다.
여자핸드볼은 올해 리우올림픽에서도 최악의 성적을 올렸다. 이 감독은 “예전에 힘만 좋았던 유럽팀이 기술까지 겸비하면서 우리가 더욱 힘겨워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팀들 간의 기량 차는 크겠지만 우리한테는 모두 힘겹다”며 “예선에서 3~4경기를 치르고 나면 체력이 방전되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 협회 부회장 겸 초등위원장을 맡게 된 이 감독은 “현장에서는 멀어졌지만 선후배들과 잘 상의해서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해부터 코치한테 권한을 위임하며 정년퇴임을 준비해왔다. 몸담았던 대구시청을 떠나지만 따로 퇴임식 없이 선수들과 식사로 대신할 예정이다. 내년 초에는 은퇴한 제자들이 따로 시간을 잡아놓고 있다. 30년 가까이 한 팀을 맡으면서 배출한 제자들은 200여명에 이른다. 이 감독은 “초창기 제자들은 벌써 나이가 50살도 넘어서면서 이젠 친구 대하듯 한다”며 껄껄 웃었다.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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