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는 세터에서부터 공격이 시작된다. 이재은이 지난해 12월 지에스칼텍스와의 경기에서 공을 띄우는 모습. 한국배구연맹 제공
스포츠 선수들은 정상에 오르길 원하고 스타가 되길 꿈꾼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다 똑같지는 않다. 프로배구 여자부에서 태풍으로 변하고 있는 케이지시(KGC)인삼공사의 야전사령관 이재은의 소망도 남다르다. 이재은은 “크게 튀지 않고 꾸준하게 기복 없이 다른 선수들에게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 한국도로공사를 통해 데뷔해 만 30살에 접어든 올해가 프로 무대 12년째지만 자신의 전성기에 대해 딱히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이재은은 “어렸을 때는 경기가 잘 안 되면 주위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 인터넷 댓글 등에 쓰인 글을 보고도 상처를 받곤 했다”며 “지금도 쫄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단단해지자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말했다. 현재 팀 내에서 둘째 언니라는 점도 그의 결심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해란 언니가 있지만 저도 고참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 부분이 늘 불안하다”고 그는 전했다.
인삼공사는 지난 8일 리그 1위 흥국생명을 세트점수 3-1로 꺾고 3연승을 달성했다. 10승9패(승점 30)로 승리가 패배보다 많다. 5할 승률이 조금 넘는 성적이지만, 지난 시즌 7승23패로 꼴찌였던 인삼공사와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시즌 전만 해도 주전 레프트인 이연주와 백목화가 재계약에 실패하고 전체 1순위로 뽑았던 외국인 선수 미들본이 임신으로 팀을 떠나며 꼴찌 탈출도 쉽지 않아 보였다. 서남원 감독은 세터 한수지를 센터로 돌리고, 센터 장영은을 레프트로, 리베로 최수빈은 레프트로 보직 변경하는 고육책을 펴야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재은은 “신인부터 언니까지 운동하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 분위기가 좋다”며 “모두 자신감이 생겼고 재미있는 배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직 변경한 선수들도 처음보다 훨씬 안정을 찾았고 본인들도 만족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한 사람에게 의존하다 보니 선수들이 수동적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좀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며 “저도 한 선수보다는 여러 선수에게 분배하려고 노력하고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여기저기서 하나씩 결과가 나오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이재은 개인적으로도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는 발목 부상을 당한 이후 오랫동안 쉬면서 복귀할 자신이 없어져 은퇴를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운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하고 싶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35살까지 하고 싶다고 한다.
서남원 감독에 대해서는 “인상 쓰는 것을 싫어하시고 즐겁게 배구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신다”고 했다. 전임인 이성희 감독과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표현을 더 많이 하고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이 다른 점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들본 대타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알레나에 대해 “실력도 좋지만 항상 밝고 적극적이어서 우리 팀에 가장 적합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인삼공사가 자신감을 되찾은 팀 분위기와 함께 4위까지 상승하면서 애초 탈꼴찌만 생각하던 선수들의 목표도 상향 조정됐다. 이재은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4위 정도를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막판 잘하면 플레이오프도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봄 배구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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