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환(휘문중)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노원구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년은 “바람을 가르는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스케이트를 탔다. 스케이트화를 신고 쭉 밀면 얼음 위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청년으로 자란 그는 이제 얼음 위로 힘껏 도약해 쿼드러플(공중 4회전) 점프까지 해낸다. 키는 175㎝로 훌쩍 자랐지만 구김살 없는 천진난만한 표정만은 아직 그대로다.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 나오면 장난스레 “어택(Attack·공격)!”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기도 한다. “피겨 하다가 힘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숨을 쉬려고 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라는 답을 하는 차준환(16·휘문중 졸업 예정). 아역 배우 출신의 ‘피겨 프린스’는 “지금은 피겨가 일상이 된 느낌”이라고 말한다.
차준환은 나이는 어리지만 속은 옹골차다. 지난 8일 끝난 종합선수권에서 국내 대회 남자싱글 역대 최고점(238.07점)으로 우승하고도 “연습 때보다 (점프) 비거리가 줄었다”면서 짙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함께 훈련하는 세계 남자 피겨의 지존, 하뉴 유즈루(23·일본)에 대해서도 “하뉴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하면 항상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다부지게 말한다. 키가 1년 새 7~8㎝가 급작스럽게 자라는 바람에 점프하고 착지를 할 때 몸이 휘청이는 등 밸런스가 흔들리는 경험도 있었지만 “경기 때가 아니라 훈련할 때 문제가 생긴 게 다행”이라고 야무지게 설명한다.
현재 세계 남자피겨는 그랑프리 파이널을 4연패한 하뉴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으며 네이선 첸(18·미국), 우노 쇼마(20·일본) 등이 하뉴를 쫓는 형국이다. 이들은 쇼트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 점프를 두 차례 시도하며 한 차례 뛰더라도 트리플 점프와 함께 콤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한다. 프리스케이팅 때는 3차례 이상 쿼드러플 점프를 뛴다. 특히 첸은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스케이팅 때 연기 초반 4번 연속 쿼드러플 점프를 콤비네이션 점프와 연계와 뛰었다. 이에 반해 차준환은 현재 쇼트, 프리 합해 쿼드러플 점프를 한 차례만 프로그램에 넣고 있다. 시니어, 주니어 차이를 고려해도 개인 최고기록에서 다른 이들에게 총점 40점 이상 뒤진다. 2016~2017 시즌 시니어 무대 첫 도전과 맞물려 쿼드러플 점프 훈련에 더욱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겨여왕’ 김연아(은퇴)를 지도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프리스케이팅에 쿼드러플 점프를 두 차례 넣겠다”고 말하고 있다.
차준환은 현재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뛰고 있다. 개인 최고점수를 기록했던 주니어 그랑프리 요코하마 대회 때나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때는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깔끔하게 성공시켜 2점의 가산점을 각각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점프를 한 프로그램에서 두 차례 뛸 수는 없다. 콤비네이션 점프로 변주를 줘야 한다. 이 때문에 3월 대만에서 열리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때 ‘쿼드러플 살코+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해볼 계획도 있다. 쿼드러플 토루프, 쿼드러플 루프 훈련도 계속 이어간다. 차준환은 “두 점프 중 완성된 것은 없다. (쿼드러플) 루프는 연습을 많이 못 했고 (쿼드러플) 토루프는 5~6번 뛰면 1~2번 성공하는 편”이라며 “잘 연습해서 좋은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15일 캐나다 토론토로 출국한 차준환의 훈련 스케줄은 ‘피겨’로만 차 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스케이팅 훈련, 지상 체력훈련 등을 이어간다. 식사나 중간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2시간 동안 훈련을 한다. 차준환은 “(훈련장인) 크리켓 스케이팅 앤 컬링 클럽에서 훈련하는 게 좋다. 연습할 때 집중이 잘된다”고 했다. 훈련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클린 연기를 했던 자신의 경기 동영상을 계속 반복해 본다. 좋아하는 걸그룹도,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없다. 골반이 아프고 오른 발목이 아파도 오로지 ‘피겨’ 생각뿐이다.
피겨 전문가들은 차준환의 기량이 2018 평창겨울올림픽이 아닌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때 만개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시니어 데뷔 첫해에 톱10 안에만 들어도 대단한 성과다. 차준환도 지금은 “대회에 나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경험을 쌓으면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림자 없는 얼굴에 그 순간만은 다부진 표정을 짓는다.
몸의 성장과 함께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많이 넘어졌을 때 차준환은 “손에 멍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는 쿼드러플 점프를 연습하며 수십, 수백번 넘어질 것이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바람을 느끼면서 빙판 위를 미끄러져 나갈 것이다. 그는 ‘바람의 스케이터’니까.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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