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점프 유망주 이주찬(왼쪽), 시정헌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아 인터뷰를 마친 뒤 2017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힘차게 도약할 것을 다짐하며 점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00m가량을 날 수 있다는 건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죠.”
시정헌(22·송호대학교)과 이주찬(20·한라대학교)은 한국 스키점프의 미래다. 대표팀 후보로 아직 국제대회 성적은 일천하지만 30대 중후반인 국가대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스키점프를 이끌어야 할 꿈나무들이다. 알마티 겨울유니버시아드 스키점프 대표인 시정헌과 이주찬을 출국 직전인 지난 25일 <한겨레> 본사에서 만났다.
시정헌은 “우리나라 스키점프는 선수층이 얇고 경기장 여건도 좋지 않지만 일본만 해도 세계 정상을 달릴 만큼 동양인이 절대 불리하지 않은 종목”이라며 “경험을 쌓아가면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일본은 스키점프 남녀에서 모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다카나시 사라(21)는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점프 월드컵에서 여자부 개인통산 50승을 거둘 정도로 독보적이다. 여자부 최다우승 기록 보유자인 그는 남녀 통틀어 최다승인 53회(그레고어 슐리렌차워·오스트리아) 우승 기록 경신도 눈앞에 두고 있다. 남자부에서는 46살의 노장 가사이 노리아키가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딴 바 있다.
스키점프는 스피드 못지않게 체공 시간이 중요하다. 봅슬레이 등 썰매 종목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선수가 유리한 반면, 스키를 타고 날아올라 체공시간이 길어야 하는 스키점프는 마른 체격이 일반적이다. 스키점프 점수는 비거리와 자세를 합쳐 매기지만 비거리가 더욱 중요하다. 좋은 자세를 취했을 때 더 먼 거리를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약대로부터 비행 기준거리에 따라 개인 K-90과 K-120으로 구분되며, K-90의 경우 기준거리인 90m를 초과하면 1m당 2점이 가산되고 미달하면 1m당 2점이 감점된다. 자세 점수는 도약·비행·착지로 이뤄지지만 사실상 착지가 점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시정헌은 “시속 80~90㎞ 속도로 미끄러지지만 조금씩 거리를 늘리다 보면 전혀 무섭지는 않다”며 “넘어지지만 않으면 부상이 전혀 없는 과학적인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시정헌과 이주찬은 조금 다른 코스를 밟아왔다. 키 192㎝의 장신인 시정헌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의 조언으로 스키점프 테스트를 받아본 뒤 덜컥 붙었다. 시정헌은 “어렸을 때는 전문 체육인이 될 생각은 없었고, 부모님이 대범해지라고 스키점프를 시켰는데 하다 보니 점차 매력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그는 중학교 때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현재 국가대표 후보로 차세대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다.
반면 이주찬은 이력이 남다르다.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반해 본인이 스키점프에 입문한 케이스다. 당시 중학교 때 스키점프 매력에 흠뻑 빠진 이주찬은 스키점프 캠프 등을 찾아다녔고, 스키 종목 팀이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하면서 스키점프에 입문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결국 “시작했으면 포기하지 마라”는 허락을 받아낸 그는 “스키점프는 여전히 멋있지만 실제 해보니 영화보다는 훨씬 어렵다”며 웃었다. 시정헌과 이주찬은 현재 조성우·임수현 등과 함께 대표팀 후보에 발탁돼 슬로베니아에서 선진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대한스키협회(회장 신동빈)가 지난해부터 독일·일본·슬로베니아에서 마련한 해외 유학 프로그램으로, 메달 유망 종목인 스키점프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다.
두 선수의 우선 목표는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고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이주찬은 “평창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큰 영광”이라며 “국가대표로 출전한다면 반드시 2차전에서도 뛸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히면서 “우리와 체격이 비슷한 일본 선수들이 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조금만 잘하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정헌은 “평창올림픽 출전은 시작에 불과하다. 늦게까지 오래도록 세계 정상의 선수로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 훈련 여건이 부족했던 터라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곧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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