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2017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을 마친 뒤 남북한 시범단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맨 오른쪽 제외)이 남쪽 시범단, 뒷줄이 북쪽 시범단. 무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천년 전 신라의 무풍과 백제의 주계로 나뉘었던 땅이 합쳐져 무주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무주에서 신라와 백제가 하나가 되었듯이, 오늘 이곳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F)과 국제태권도연맹(ITF)이 하나가 되고, 남북이 하나가 되고 세계가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24일 저녁 전북 무주군 태권도원의 T1 경기장에서 열린 2017 세계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한 말이다. 국기인 태권도가 남북 스포츠 교류를 통한 화해 분위기 조성에 기폭제 구실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이날 북한의 스포츠 거물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인솔하고 온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 고위 관계자들이 자리를 했고, 개막식 행사 말미에는 북한 태권도시범단 16명이 10년 만에 다시 국내에서 리얼하고 전투적인 시범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번 북한 시범단의 방한 공연은 조정원(70) 총재가 이끌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의 초청을 통일부가 승인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세계태권도연맹은 앞서 2년 전 5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선수권대회 때 국제태권도연맹 시범단을 처음 초청해 합동 공연을 선보임으로써, 전세계 8000만 태권도인은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 쪽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이 두번째다.
북한 주도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원들이 24일 무주 태권도원에서 멋진 격파를 선보이고 있다. 무주/연합뉴스
이어 오는 9월에는 반대로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국제태권도연맹 제20회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평양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정원 총재는 24일 이와 관련해 “북한 시범단이 이번에 온 것은 2014년 8월에 맺은 중국 난징 의정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북한도 우리를 초청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인원수는 이번에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징 의정서는 두 태권도 단체가 당시 난징에서 열린 유스올림픽 때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호 인정과 존중, 다국적 시범단 구성 등을 약속한 것을 말한다.
태권도는 대한민국 국기로 원래 뿌리는 하나이지만, 1966년 서울에서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한 육군소장 출신 최홍희(작고)씨가 당시 박정희 정권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두 갈래가 됐다. 초대 총재이던 최씨가 캐나다에서 북한에 사범을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그쪽과 인연을 맺는 바람에 결국 국제태권도연맹은 북한이 주도하게 됐다. 그러자 한국에서는 당시 외교부에서 근무하던 김운용(전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주도로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했다. 국제태권도연맹과 달리 세계태권도연맹은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에 버금가는 208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산하 매머드 경기단체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올림픽 운동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두 태권도 국제단체의 통합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상호 협력은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조정원 총재는 “두 조직을 통합한다는 것은 한번도 언급하거나 논의한 적 없다”면서도 “난징 의정서에 상호 서로의 조직을 존중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태권도를 통해 성사된 남북 스포츠 교류가 앞으로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무주/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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