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남자단식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손완호가 지난 7월25일 오전 태릉선수촌 오륜관에서 훈련 도중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폭염주의보가 떨어진 지난 7월25일 오전 서울 태릉선수촌 오륜관. 바깥 온도가 섭씨 30도를 훌쩍 넘겼는데, 체육관 안에서는 에어컨도 틀지 않은 채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라켓을 휘두르며 훈련 중이다. 올해 새롭게 배드민턴 대표팀을 이끌게 된 강경진(44) 감독이 구슬땀을 훔쳐가며 한 여자단식 선수한테 리시브 훈련을 시키는 코트에는 셔틀콕이 수북이 쌓여 있다. “에어컨 틀면 셔틀콕이 날리잖아요. 그래서….”
체육관 한쪽 편을 보니 ‘World Champion Korea Badminton Team’이라고 쓰인 펼침막이 올림픽 마크 사이로 큼직하게 붙어 있다. 지난 5월28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2017 세계혼합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7연패이자 통산 10회 우승을 노리던 세계 최강 중국을 3승2패로 제압하고 ‘수디르만컵’을 들어올린 대표팀의 위용을 상징하는 듯하다.
반대편 한쪽 구석 코트에서는 남자단식 간판스타 손완호(29·김천시청)가 후배인 김동훈(24·밀양시청)과 실전게임을 하며 숨을 몰아쉰다. 그 옆에서는 배드민턴 강국 인도네시아에서 영입한 아구스 뒤 산토소 남녀단식 총괄코치가 연신 둘의 연습경기를 지켜보며 조언을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수비를 뽐내는 손완호가 후배 김동훈과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손완호. 배드민턴 대표팀 주장인 그는 지난 6월8일부터 현재까지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남자단식 세계 1위다. 순위로는 리총웨이(35·세계 2위·말레이시아), 천룽(28·5위·중국), 린단(34·7위·중국) 등 세계 정상급 3인방을 넘어선 것이다. 한국 선수가 남자단식 맨 윗자리에 오른 것은 2004년 2월 이현일 이후 13년 만이다. “아무래도 세계랭킹 1위이다 보니 시합 나가면 부담도 있는 반면, 자신감과 자부심이 많이 생깁니다. 리총웨이나 천룽이 계속 1위를 했는데, 그 선수들이 시합을 조절해서 나오다 보니 제가 1위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높은 등급 대회는 거의 다 나가니 포인트가 많이 쌓이게 된 거죠.” 물론 상위 랭커라고 우승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손완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태릉선수촌 오륜관 휴게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손완호는 한국 나이로 30살을 넘겼다. 2006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1m76, 70㎏. 국제대회 남자단식 총 417전 270승147패. 올해는 15승8패를 기록 중이다. 그는 수비에 관한 한 세계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스스로는 “최고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톱 수준”이라고 말한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차분한 편이다 보니, 어릴 적부터 공격적이기보다는 수비 스타일로 배드민턴을 했어요. 공격력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죠. 그러나 수비가 잘되는 날은 세게 안 때려도 날카롭게 공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강경진 감독은 이런 그에 대해 “디펜스와 스트로크가 안정적이고, 크게 무리 않고 정확한 스트로크와 수비를 구사한다”고 칭찬한다.
세계 1위지만 최근에는 국제대회 남자단식 우승 타이틀이 없다. 과거 이따금 리총웨이와 천룽을 누르고 슈퍼시리즈 우승 돌풍을 일으킨 적은 있다. 2012년 4월 인도오픈 결승에서 당시 세계 최강 리총웨이를 2-1(21:18/14:21/21:19)로 누르고 슈퍼시리즈 첫 우승 감격을 누렸을 때, 그리고 2014년 11월 홍콩오픈에서 천룽을 2-0(21:19/21:16)으로 제치고 우승했을 때가 아직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엔 한 해를 결산하는 두바이 월드 슈퍼시리즈 파이널스에서 리총웨이를 2-0(21:10/21:16)으로 누른 것도 큰 성과의 하나. 그러나 역대 전적에선 리총웨이한테 2승10패, 린단한테 2승12패, 천룽한테 4승10패로 뒤지고 있다.
손완호는 2016 리우올림픽 남자단식 8강전에서 아쉽게 천룽한테 1-2(11:21/21:18/11:21)로 지는 바람에 평생 소원인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또다시 이루지 못한 채 천룽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앞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16강전 탈락의 아픔을 맛본 그에게는 이제 만 32살이 돼서 맞이하게 되는 2020 도쿄올림픽이 남아 있다. “현재 크게 아픈 데가 없어요. 그때까지 몸이 되면 다시 한번 도전할 생각입니다.” 3회 연속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오종환 김천시청 배드민턴팀 단장은 “완호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착하고 성실한 선수”라며 “체력이 유지되면 도쿄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메달에 도전할 만하다”고 거든다.
리총웨이, 린단, 천룽 가운데 누가 손완호한테 가장 힘든 상대일까? “천룽은 웬만한 셔틀콕은 다 받아내요. 키도 크고 리치도 길고, 상대를 지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리총웨이는 빠르고 공격적이고, 린단은 예전보다 공격력은 떨어져도 게임능력은 여전히 좋아요. 건재합니다.”
손완호가 배드민턴 대표팀 남녀단식 총괄코치인 아구스 뒤 산토소가 지켜보는 가운데 후배 김동훈과 연습경기에서 강스매싱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 금메달은 있지만, 아직 세계선수대회 개인전 메달이 없는 손완호는 오는 21~27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2017 세계배드민턴연맹 세계선수권(개인전) 메달을 목표로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6시간, 일주일에 6번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대회는 잘하는 선수들이 다 나옵니다. 1번 시드인 만큼 최선을 다해 메달을 따겠습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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