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연경은 왜 ‘실명’을 거론했나
김연경은 왜 ‘실명’을 거론했나
▶ ‘연경신’이 화가 많이 났다. 기자들 앞에서 대표팀에 불참한 후배를 콕 찍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모르고 그랬을까. 그가 ‘저격’하려 했던 대상이 정말 후배였을까. 그는 왜 그 누군가를 향해 쓴소리를 해야 했을까.
2020년이면 김연경은 세는나이로 서른셋. 도쿄올림픽이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그의 스파이크와 점프를 ‘최고점’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다. 대표팀한테도 ‘김연경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6년 8월16일 리우올림픽 8강 네덜란드전에서 코트를 이동 중인 김연경.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대표팀 불참한 이재영에 쓴소리
엔트리 못 채운 연이은 강행군에
주전들 혹사, 프로팀도 비협조적
손놓은 배구협회 향한 불만인듯 국내외 리그 평정한 월드스타지만
2020년이 마지막 올림픽 될 수도
대표팀 흥해야 배구판도 살기에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그 간절함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애증의 흥국생명…구원이 작용했나 “의미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예능 프로 등 방송 출연 경험도 풍부한 김연경이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하고 특정 선수를 거명했던 걸까? 김연경의 ‘작심 발언’의 배경을 이재영과 그의 소속팀인 흥국생명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김연경에게 친정팀은 흥국생명이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영입 후 약체에서 강호로 탈바꿈했다. 김연경이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있던 5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화려하다. 구단은 통합우승 2회, 정규리그 우승 1회,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과 우승을 각각 한 번씩 차지했다. 2009년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제이티 마블러스에 김연경을 임대로 보냈고 구단은 통 큰 결정을 내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있으면 반대의 경우도 오기 마련. 김연경이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한 뒤 자유계약선수(FA) 신분과 관련한 선수 자격 문제를 놓고, 둘 사이가 멀어졌다. “국내 리그에서 에프에이 자격을 얻지 못해 여전히 흥국생명 소속”이라는 구단과 “해외 구단에서 임대 선수 자격으로 뛴 기간도 흥국생명 소속으로 인정하면 에프에이 자격이 된다”는 김연경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둘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해당 문제를 두고 1년 반이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 국제배구연맹(FIVB)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김연경의 손을 들어주고서야 사태는 일단락됐다. 공교롭게도 이재영이 뛰고 있는 팀이 바로 흥국생명이다. 그래서 김연경이 여전히 흥국생명에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축 선수인 이재영을 아끼려 대표팀 차출에 비협조적인 흥국생명과 이에 동조하는 듯한 이재영의 태도에 김연경이 예전부터 불만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많은 배구팬들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 흥국생명이 대표팀에 한 명도 보내지 않는 사실을 비판하고 있다. 지켜만 보는 배구협회 김연경은 자신의 발언이 불러온 논란에 대해 해명하면서 “인천공항 인터뷰는 대표팀 선수 관리뿐만 아니라 인재 발굴 및 육성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닻을 올린 ‘홍성진호’는 월드그랑프리 준비 때부터 선수 부족에 내내 시달려왔다. 최초 예비엔트리(21명)가 구성되고 다시 18명으로 줄었을 때 이재영은 제외됐다. 14명 최종 엔트리가 정해졌으나 대표팀은 12명만으로 그랑프리 2그룹 대륙간 라운드와 결선 라운드를 치렀다. 14명 엔트리에 들었던 이소영(GS칼텍스)과 배유나(한국도로공사)가 부상으로 빠졌다. 이럴 경우 예비엔트리(18명)에 속한 선수 중에서 대체 전력을 뽑아야 했지만 배구협회는 그러지 않았다. 그랑프리 결선 라운드를 마친 대표팀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난 1일, 홍 감독은 “선수단 체력 문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짧은 휴식을 마친 뒤 재소집돼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일정 때문이다. 홍 감독은 대표팀 엔트리 변경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이소라(한국도로공사)와 김해란(흥국생명)을 대신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참가 예비엔트리에 있는 이재은(KGC인삼공사)과 나현정(GS칼텍스)이 합류한다고 했다. 여기에 센터인 김유리(GS칼텍스)가 추가됐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14명 엔트리를 다 채우지 못했다. 지난 7일 선수단은 한 명이 부족한 13명으로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표팀에서 앞서 그랑프리 일정을 소화했던 선수들도 이런 사정을 다 알고 있다. 선수 입장에서도 왜 엔트리를 다 채우지 않았는지 의문이 가기 마련이다. 김연경의 발언은 결국 이 같은 의문과 불만들이 쌓였다가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정해진 엔트리를 채운다고 해서 김연경이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엔트리가 13명이든 14명이든 대표팀은 결국 주축 선수 6~7명으로 경기를 꾸려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상황에서 차출된 주력 선수들의 혹사는 뻔히 예상되는 일이기에 구단들은 핵심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를 해결해야 할 협회가 불구경만 하고 있는 점. 결국 김연경처럼 시도 때도 없이 대표팀에 불려나오는 선수들만 답답한 노릇일 수밖에. 대표팀 운영 방식과 선수 차출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이번 홍성진호에서만 눈에 띄게 도드라진 건 아니다. 국제대회가 끝난 뒤 으레 배구협회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김연경뿐만 아니라 대표팀 선수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주먹구구식 대표팀 운영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지원만이라도 해달라”는 요구다. 김연경의 발언이 나오기 얼마 전, 대표팀은 때아닌 ‘항공권 좌석 논란’으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협회는 지난 7월 체코에서 열린 그랑프리 세계대회 결선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애초 절반만 비즈니스석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185㎝ 이상과 부상이 있는 선수만 비즈니스석에 태우겠다는 것. 키 183㎝인 오한남 배구협회 회장이 홍성진 감독에게 제안한 기준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빗발쳤고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이 결국 3000만원을 지원해 모든 선수가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었다. 배구협회의 부실한 재정과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태였다. 김연경 그리고 2020 올림픽 대표팀을 꾸리는 과정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 확실하다.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 대부분은 V리그에서 뛰고 있다. 대표팀 일정은 보통 V리그 오프시즌과 겹친다. 오프시즌 각 구단과 선수들은 정규시즌만큼이나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부상에 따른 재활 및 보강 운동을 해야 하는 동시에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간다. 이러다 보니 각 구단은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 소속으로 뛰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배구협회는 당장 협회를 운영하는 일만 해도 벅찰 지경이다. 모아둔 배구발전기금은 이미 소진된 지 오래됐다. 임태희 전 회장이 떠난 뒤 집행부를 꾸리는 과정에서 우여곡절과 사건도 많았다.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연합회 통합에 따른 영향도 받았다. 꾸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집행부 입장에선 이번 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서운할 수도 있다. 대표팀 선발 전권을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에 일임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마저도 쉬운 해결책은 아니다. 국제배구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관은 배구협회뿐이다. 국제배구연맹이 ‘1국 1협회’ 방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좋으나 싫으나 국제대회와 관계된 일은 배구협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배구협회에도, 한국배구연맹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국제대회 성적을 V리그 흥행과 따로 둘 수 없는 이유다. 한국 여자배구는 가능성과 과제를 모두 안고 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2016 리우올림픽 8강에 올랐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3년 뒤인 2020년이면 김연경은 세는나이로 서른셋. 그에게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그의 스파이크와 점프를 ‘최고점’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다. 대표팀한테도 ‘김연경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연경 자신이다. 이번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의 성적은 내년 아시아선수권의 시드 배정을 결정한다. 내년 아시아선수권은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린 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파장과 상처를 무릅쓰고 이재영의 이름을 거론한 김연경의 목소리엔 이런 절박함과 바람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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