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21일(한국시각)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막을 내린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농구연맹 누리집
‘창사 참사’. 사실은 농구가 먼저였다. 지난 3월, 한국 축구는 창사 원정에서 중국에 0-1로 졌다. 충격은 컸다. 그런데 남자농구는 2년 전 ‘참사’를 먼저 경험했다. 2015 창사 아시아선수권에서 레바논에 져 6위에 그쳤다. 5위까지 출전하는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세월이 흘렀다고 나아진 건 없었다. 지난달 초, 첫 소집훈련 때 남자농구 대표팀은 오합지졸이었다. 15명 중 7명이 부상이었다. 허재 감독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김주성(38·동부)과 양동근(36·모비스) 등 베테랑도, 문태종(42·오리온), 문태영(39·삼성) 등 귀화 혼혈선수도 죄다 빠졌다. 2014 인천 아시아경기 우승 멤버는 고작 5명 뿐이었다.
코 앞에 닥친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조별리그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4강에 올랐고, 4강전에서 ‘아시아 최강’ 이란과 접전 끝에 아쉽게 졌다. 조별리그에 이어 3-4위전에서 한국(30위)보다 피바 랭킹이 10계단이나 높은 뉴질랜드(20위)를 다시한번 물리치고 동메달을 따냈다. 아시아대회에 첫 출전한 우승국 호주를 빼면 당당 아시아 2위다.
허재 감독의 ‘마법’은 뭘까. 맞춤형 전략과 잠재력을 끌어낸 리더십이다. 허 감독은 ‘초딩 선배’ 유재학 모비스 감독의 조언을 받아들여 ‘2m 가드’ 전술을 썼다. 장신이면서 슈팅능력과 수비력을 갖춘 최준용(SK)을 활용한 드롭존 수비는 제대로 먹혔다. 허 감독은 ‘다혈질’ 필리핀과의 8강전에선 “절대 말려들지 말라”고 누차 강조했다. 평정심을 유지한 한국은 혼혈·귀화선수가 태반인 필리핀(27위)을 32점 차로 대파했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 주장 오세근(30·인삼공사)이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서 베스트5에 선정됐다. 국제농구연맹 누리집
한국 남자농구대표팀 김선형(왼쪽)이 21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뉴질랜드와의 3-4위전에서 날렵하게 돌파를 성공하고 있다. 김선형은 이날 13득점, 6튄공잡기, 7도움주기, 5가로채기의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80-71 승리를 이끌었다. 국제농구연맹 누리집
‘4인4색’ 빅맨들의 장점은 극대화됐다. 주장 오세근(30·인삼공사)은 김주성을 잇는 에이스로 성장하며 대회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김종규(26·LG)는 가드못지 않은 스피드로, 이승현(25·오리온)은 엄청난 힘으로, 이종현(23·모비스)는 223㎝의 윙스팬(두팔 벌린 길이)으로 제공권에서 밀리지 않았다.
한국은 이번 대회 경기당 88.3점으로 2위에 올랐다. 원동력은 성공률 41.7%의 고감도 3점슛. 성공률은 8강에 오른 팀 중 최고이고, 성공 갯수는 경기당 10.4개로 필리핀(11개)에 이어 2위다. 그날그날 슛 컨디션을 봐가며 전준범(26·모비스), 임동섭(27), 허웅(24·이상 상무)을 돌아가며 투입한 것도 큰 효과를 봤다. 포인트가드는 ‘포스트 양동근’으로 김선형(29·SK)을 다시 확인한 것도 큰 소득이다. 이제 평균 26살의 젊디젊은 남자농구 대표팀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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