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클라크가 지난해 9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미국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크시티(유타)/AFP 연합뉴스
켈리 클라크(34·미국)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 따낸 우승은 특별한 것이었다. ‘9·11 테러’로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뒤 처음 열린 대규모 국가 대항 경기였다. 클라크는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조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미국 국가와 함께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전세계로 송출한 시상식은 테러로 상처받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클라크는 “세상에 가슴 아픈 일들이 많지만, 스포츠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며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날 경기가 (그런) 역할을 해줬다”고 돌아봤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8살.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세운 스노보드 최연소 금메달 기록이었다. 클라크는 2살 때 스키, 8살 때 스노보드를 시작했다. 2001년엔 미국 스노보드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듬해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 올림픽에서 2006년 4위,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 대회에선 잇따라 동메달을 따냈다. 이뿐만 아니라 겨울 익스트림 스포츠를 겨루는 세계 엑스(X)게임에서 7차례 우승, 버튼 유에스(US) 오픈 8차례 우승, 월드 스노보드투어 시즌 챔피언 5차례 등 이미 ‘스노보드계의 전설’로 경력을 쌓았다. 어느덧 34살이 됐지만, 2016~2017시즌 스노보드 세계순위 2위를 유지할 만큼 기량이 건재하다.
그는 평창 대회에서 다섯번째 올림픽 출전에 도전하고 있다. 2002년 이후 2014년 러시아 소치까지 한차례도 올림픽을 거르지 않았다. 여성 선수가 겨울올림픽에 다섯 차례 연속 출전한 사례는 아직 없다. 2015년 엑스게임 도중 햄스트링이 찢어지고, 고관절 부근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은 뒤에도 “수술이 잘됐고, 100% 회복해 경기장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켈리 클라크(왼쪽)가 지난해 12월 미국 콜로라도 코퍼마운틴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한국계 클로이 김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퍼마운틴(미 콜로라도)/AFP 연합뉴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미국 대표팀 안에서 경쟁하는 세계순위 1위 클로이 김(17)이다. 클로이 김은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미국인이자 최근 세계대회를 싹쓸이하는 ‘천재 스노보더’로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클로이 김이 첫번째 평창올림픽 미국 대표팀 선발권을 이미 따냈고, 클라크는 남은 두 장 가운데 하나를 노리고 있다. 클로이 김이 평창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클라크의 최연소 올림픽 스노보드 금메달 기록도 자연스럽게 ‘후배’ 몫이 된다. 반면, 클라크가 금메달을 따면 올림픽 스노보드 사상 첫 최연소·최고령 동일 인물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다.
켈리 클라크가 지난해 9월 뉴질랜드 카드로나에서 열린 뉴질랜드 겨울스포츠대회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 출전해 연기를 하고 있다. 카드로나/AP 연합뉴스
클라크는 스스로를 ‘고집쟁이’라고 불렀다. 그는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지만, (평창올림픽 참가를 통해) 여성이 스노보드 위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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