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들의 왼쪽 장갑 끝에는 동글동글한 방울이 달려 있다. 모양이 개구리 손을 닮아 일명 ‘개구리 장갑’으로 불린다. 언뜻 아이들 장난감 같기도 한 이 장갑에는 쇼트트랙 경기력과 직결되는 과학이 숨어 있다.
쇼트트랙 코스 111.12m 중 절반가량(약 53m)은 곡선 구간이다. 선수들은 곡선 주로를 돌 때 몸이 원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원심력의 영향을 받는다. 이때 원심력에 맞서 버티려면 원의 안쪽 방향으로 작용하는 구심력을 높여야 한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코너를 돌 때 몸을 트랙 안쪽으로 쓰러질 듯 기울이는 이유다.
문제는 빙판에 손을 짚을 때 발생하는 마찰력이다. 선수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빙판을 짚지만, 마찰력이 생기는 만큼 속도도 줄어든다.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기훈(51) 울산과학대 스포츠지도과 교수 역시 선수 시절 빙판과의 마찰력을 줄이기 위해 장갑에 비닐 테이프를 감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1988 캘거리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김 교수는 당시 스케이트화 발목 부분의 고정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에폭시(epoxy) 액을 장갑 손가락 끝부분에도 발라봤다. 에폭시는 접착제와 발수제 등으로 쓰이는 물질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에폭시를 바른 장갑은 끝부분이 테이프와 비교해 딱딱한데다 천장갑보다 마찰력이 적어 코너를 매끄럽게 돌 수 있었다. 김 교수가 수작업으로 만들어 썼던 개구리 장갑은 이제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개구리 장갑의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아 특허권은 김 교수에게 있지 않다.
자신이 처음 발명한 개구리 장갑이 전세계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퍼져나간 것에 대해 김 교수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연구했던 개구리 장갑이 선수들 기록에 도움이 되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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