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쇼트트랙대표팀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올림픽 금메달 6개. 중국의 왕멍(통산 금메달 4개)조차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쇼트트랙 도입 이후 최다 메달 획득(8개)은 아폴로 안톤 오노와 같지만, 오노가 딴 금메달은 2개일 뿐이다. 선수로서 정점과 나락, 재기 등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극적인 요소까지 갖췄다.
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 안현수(33)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의 히트상품이다. 전문가들은 “전성기를 넘었다”고 했고, 본인도 “욕심은 없다. 아름다운 경기를 고민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현수의 폭풍질주를 아는 사람들은 평창의 이변을 기대한다.
안현수는 2014년 소치올림픽 3관왕(500m, 1000m, 5000m 계주)에 오르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신문사 만평에는 열광하는 국내 팬들을 ‘간첩 아니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정보요원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안현수의 선전은 한국과 러시아의 정서적 거리감을 대폭 줄였다.
더 극적인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안현수 문제가 파벌이나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의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 한마디로 소치에 있던 빙상연맹 대표팀은 초상집이 됐고, 결과적으로 남자팀은 한 개의 메달도 챙기지 못했다.
안현수가 2006년 2월 이탈리아 팔라벨라 빙상장에서 열린 2006 토리노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흔들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토리노/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소치올림픽에서 때아닌 이슈가 됐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언론의 융단폭격과 누리꾼들의 악플로 초토화됐다.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인 ‘쇼트트랙 대부’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는 당국에 의해 탈탈 털렸다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복권됐다. 고교생 안현수를 발탁해 키운 그는 “소치올림픽 때도 안현수와는 방에서 매일 도시락밥을 함께 먹고 지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알고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빙상연맹의 전직 임원은 “누군가 써준 글을 읽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평창올림픽 이후 강릉의 빙상장 등 시설물을 사업장으로 활용하려 구상했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계획이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났듯이, 걸림돌인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무력화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추론이 나온다.
안현수를 비롯한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안현수는 소치 3관왕으로 러시아 올림픽 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딴 뒤 러시아의 스타가 됐다. 안드레이 막시모프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빅토르가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팀 동료들이 그를 따라서 한다”고 칭찬했다.
러시아 쇼트트랙대표팀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뒤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소치/연합뉴스
지난해 7월과 12월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 일원으로 한국체대에서 전지훈련을 한 안현수는 파벌 논란에 선을 그었다. 그는 “전명규 교수님이 나의 귀화와 관련이 있다는 식의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매년 개인적으로라도 한국체대에 찾아오는 이유는 은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이제는 그런 잘못된 얘기가 더 이상 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현수는 “평창올림픽 목표는 따로 두지 않았다”고 했다. 동메달 하나만 추가해도 세계 쇼트트랙 사상 전무한 9개의 메달을 따는 신기원을 이루지만, 메달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평창올림픽에서 전설로 남는 것을 꿈꾼다. 그것은 영광과 좌절의 양극단을 오가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 올린 대견함을 팬들과 확인하는 자리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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