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줄리안 이가 2016년 3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피겨 챔피언십 대회에서 쇼트 프로그램을 연기하고 있다. 보스턴/EPA 연합뉴스
평창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 출전하는 줄리안 이(21·말레이시아)는 ‘평창의 꿈’이 낳은 기적이다. 줄리안은 12살이던 2009년 강원도가 눈과 얼음이 없는 나라의 청소년들을 초청해 2주간 겨울스포츠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드림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지만 진짜 선수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드림 프로그램은 그를 선수로 만들었다. 지난해 9월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네벨혼 트로피에서 당당히 6위를 차지하며 말레이시아 최초로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주인공이 됐다.
줄리안은 8일 강원도 강릉 씨마크 호텔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9년 전 부모님 없이 혼자 왔던 평창에 말레이시아 최초의 겨울올림픽 대표로 다시 돌아오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열대국가인 말레이시아 소년에게 올림피언의 꿈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있는 4개의 빙상장은 모두 국제대회 규격의 3분의 2에 불과해 올림픽을 위한 실전 훈련이 어렵다. 이 때문에 줄리안은 평창에서의 드림 프로그램이 “피겨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줄리안은 2014년 전지훈련 때도 한국을 찾아 태릉선수촌에서 두달 동안 유남훈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는 “당시 한 건물에 여러 개의 빙상장이 있는 태릉선수촌이 인상 깊었다. 우상과 같았던 김연아 선수의 훈련 모습을 실제로 봤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웃어 보였다.
줄리안은 좀더 나은 여건에서 평창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2016년 8월 캐나다로 이주해 훈련을 해왔다.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쇼트프로그램 성적에 따라 결정되는) 프리스케이팅 출전 자격을 얻게 되면 좋겠지만, 확률은 반반”이라며 “평창에서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줄리안은 평창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강릉에서 열린 성화봉송 행사에 참여해 성화봉을 들고 달리는 추억도 만들었다.
강릉/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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