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저녁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예선 1조 경기에서 한국의 최민정(오른쪽)이 넘어진 이유빈과 손으로 터치하고 있다. 강릉/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아뿔싸!
한국이 네 바퀴를 거의 다 돈 상황에서 막내 이유빈(17·서현고)이 느닷없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캐나다 등 다른 세 팀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큰일났다. 8년 전 밴쿠버겨울올림픽 결승에서 1위를 하고도 석연치 않는 판정으로 실격을 당해 금메달을 놓쳤던 악몽이 되풀이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데 노련한 최민정(20·성남시청)이 순발력 있게 막내한테 다가가 손으로 터치를 한 뒤 추격의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총 27바퀴를 돌아 순위를 가르는 여자 3000m 계주. 시간은 충분히 있었지만 “대~한민국”을 외치던 응원단은 마음 졸이며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때부터 믿기지 않는 역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13바퀴를 남기고 심석희(21·한국체대)가 기어코 세 팀의 꽁무니까지 다가갔다. 이어 11바퀴를 남기고 3위, 9바퀴를 남기고는 2위가 됐다. 그리고 7바퀴를 남기고 기어이 선두로 치고 나섰고, 시간이 갈수록 2위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4분06초387의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10일 저녁 강원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첫날 여자 3000m 계주 예선 1조 경기에서 기적 같은 드라마를 썼다. 그러나 ‘기적’은 오랜 훈련의 결과라는 평가다. 심석희, 최민정, 이유빈, 김예진(19·한국체대 입학 예정) 등 세계 정상권 선수로 구성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이런 변수까지 고려해 훈련을 거듭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겨울올림픽에서 김소희,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가 이 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일궈낸 것을 시작으로 7번 중 무려 5번이나 올림픽 정상에 오른 한국 여자 쇼트트랙 계주의 진가를 보여준 경기였다.
전이경 싱가포르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다른 개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여자 계주는 늘 한국의 클래스가 달랐다. 한국 선수들은 훈련량이 엄청나고, 넘어졌을 때 상황도 고려해 훈련하기 때문에 이런 역전극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표팀의 훈련량과 강도에 대해서는 외국 선수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영국 쇼트트랙 에이스 엘리스 크리스티(28)는 올림픽 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한국 전지훈련 경험을 떠올리며 “(연습 때 정해진) 랩타임을 지키지 못하면 계속 돌고 또 돌았다. 얼음판에서 벗어나면 육상 트랙을 돌아야 했다. 아침에 12살 스케이터가 등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하루 1000개의 스쿼트를 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이 성공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20일 저녁 여자 계주 3000m 결승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10일 예선 2조 경기에서 한국의 올림픽 기록을 곧바로 갈아치우며 1위(4분05초315)를 한 중국과 치열한 우승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강릉/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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