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안현수, 마티외 튀르고트, 안톤 오노(오른쪽부터)가 뒤엉켜 넘어진 순간. 솔트레이크시티/AP 연합
‘운 좋게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공함’이란 뜻의 ‘Do a Bradbury’(브래드버리 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의 주인공은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45)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나이로 통한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에서 그는 무려 세번의 행운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호주 최초의 겨울올림픽 금메달이다.
브래드버리는 1991년 시드니 세계선수권대회 5000m 계주 우승,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선수지만 29살에 출전한 2002년 올림픽 때는 연이은 부상으로 ‘한물간 선수’ 취급을 받았다.
기적은 쇼트트랙 1000m 준준결승부터 일어났다. 그는 오심 논란 속에 이 대회 1500m 금메달을 딴 안톤 오노(미국), 500m 금메달리스트 마르크 가뇽(캐나다)과 한조였다. 둘은 2위까지 주어지는 준결승 진출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2위로 골인한 가뇽의 실격으로 3위 브래드버리는 4강에 진출하는 기회를 잡았다.
준결승에선 전 대회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김동성, 리자쥔(중국)과 겨뤘다. 브래드버리는 5명 중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바퀴가 남은 상황에서 김동성이 넘어지고 마지막 코너에서 리자쥔과 캐나다 선수가 충돌하는 바람에 2위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전은 안현수, 오노, 리자쥔, 마티외 튀르코트(캐나다) 등 당시 최고의 선수들과의 승부였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치열하게 선두를 다투던 안현수와 오노, 리자쥔이 한꺼번에 넘어졌고, 이들을 쫓던 튀르코트까지 추돌을 피할 수 없었다. 이어 한참 떨어져 꼴찌를 달리던 브래드버리는 유유히 결승선에 들어왔다. 금메달이었다. 두 팔을 들고 환호했지만 겸연쩍은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영웅 대접을 받았고, 심지어 기념우표까지 발행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금메달을 딴 게 아니라 지난 10년간의 노력에 대한 상이라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