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A조 예선 한국 대 체코 경기. 한국 조민호(가운데)가 첫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스하키 ‘변방’ 한국이 매서운 아이스하키를 선보였다. 올림픽 참가국들도 한국을 경계할 것으로 보인다.
백지선(51)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5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A조 체코와 1차전에서 1-2(1-2 0-0 0-0)로 졌다. 하지만 세계적 강호인 체코(6위)를 상대로 조민호가 선제골을 뽑았고, 한국(21위) 선수들은 체코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골리 맷 달튼이 ‘신들린듯한’ 방어로 골문을 굳게 지킨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만, ‘벌떼하키’의 끈끈한 힘도 한몫했다. 공격력이 뛰어난 조민호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1피리어드 7분34초에 터진 조민호의 선제골로 기선을 잡았다. 조민호는 상대 진영으로 총알 같이 질주하면서 브락 라던스키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올려준 공을 손목의 힘으로 강하게 후려쳐 골망을 흔들었다. 상대 골리 옆구리를 살짝 스치듯이 예리한 각도로 파고든 슛은 누구도 막기 힘든 골이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올림픽 동메달을 딴 전통의 강호 체코는 허를 찔렸다. 1만 좌석을 갖춘 경기장을 거의 메운 관중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북한응원단도 열띤 응원으로 한국 선수단을 격려했다.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대한민국-체코의 경기를 찾은 북측 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반격에 나선 체코는 1피리어드 12분 한 명의 선수가 더 많은 파워 플레이 상황에서 동점골을 얻어내 균형을 맞췄고, 16분에는 한 명이 적은 숏핸디드 상황에서 역전골을 넣었다.
체코의 거침없는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스케이팅 능력이 좋은 한국 선수들은 한발짝 더 뛰는 ‘벌떼 하키’로 체코에 더 이상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캐나다 출신의 한국팀 골리인 맷 달튼은 한국이 대등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 달튼은 체코의 파상공세로 문앞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상대가 날린 퍽을 쳐냈고, 전후좌우 물샐틈 없는 방어로 수 차례 결정적인 실점 위기에서 한국을 구했다.
든든한 달튼을 배경으로 한국 선수들은 자신 있게 체코의 진영을 파고들었다. 수비수 김원준, 이돈구, 에릭 리건 등이 차분하게 공을 관리하면서 찔러주었고, 조민호와 김상욱, 김기성 등이 거침없이 적진을 파고 들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15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A조 1차전 체코와 경기에서 잘 싸운 뒤 북한 응원단의 격려 속에 퇴장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백지선 감독은 3피리어드 종료 1분을 남겨두고는 골리까지 뺀 ‘엠프티넷’ 작전으로 득점을 노렸다. 골문을 비워 놓는 대신 공격수를 한 명 추가한 이 작전은 종료 벨이 울리는 순간 강력한 슬랩샷으로 연결됐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한국의 막판 공세는 매서웠다. 체코 선수들은 승리가 확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좋아했다. 그만큼 이날 싸움은 격렬한 접전이었다.
한국은 세계 랭킹에서 이번 대회 최약체로 평가받는다. 신체 조건(체코팀 평균 키 185㎝, 평균 체중 89㎏)에서도 한국(평균 키 182㎝, 평균 체중 85㎏)은 체코에 뒤졌다. 하지만 기동력과 스케이팅 기술을 바탕으로 만만치 않는 전력을 과시했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7일 4시40분 스위스(7위)와 A조 2차전을 벌인다. 조민호는 경기 뒤 “앞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와 만나는 스위스는 긴장해야 할 것이다.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서 더 좋은 경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릉/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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