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서 10여년 전 촬영된 여자화장실 불법 촬영 영상(동영상) 문제가 다시 불거져 학교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생겼다. 이 동영상의 촬영 시점을 모르는 재학생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 대학 커뮤니티 등에서 논란이 이어진 것이다. ‘시효 없는’ 디지털 성범죄의 공포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다.
이 대학에서 동영상에 대한 공포가 다시 퍼진 건 지난 1월 말께다. 당시 이 학교 학생 커뮤니티에서 ‘교내 여자화장실에서 찍힌 동영상이 떠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해당 영상에는 촬영 시점(2006년)과 장소가 자막으로 공개돼 있지만, 직접 영상을 보지 않은 재학생들은 최근 벌어진 사건이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불안에 휩싸인 것이다.
이에 이 학교의 대표성을 가진 학내 단체가 직접 문제의 동영상을 찾아본 결과, 12년 전 촬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학의 학내 단체 관계자는 27일 “2000년대 중반 교내 여자화장실에서 촬영된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학교 쪽에 동영상 삭제를 위한 조처를 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대학 졸업생들은 2006년 무렵에도 해당 동영상의 존재는 교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학교 내 건물 이름이 명기된 여자화장실 동영상이 유포됐고,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이 공포에 떨었다는 것이다. 당시 학교 쪽도 불법 촬영의 대책으로 방학 기간 동안 화장실 칸막이의 하단 틈새를 막는 공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 대학 총학생회장은 “학교 쪽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현실적으로 범인을 잡기 어렵다. 영상을 다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불법 촬영이 어렵게) 화장실을 공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불법 촬영 동영상의 공포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학교 쪽은 영상 삭제 및 촬영자 처벌을 위해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겠다는 방침이다. 학교 관계자는 “영상 삭제는 물론 유포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위해 현재 경찰에 문의를 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 촬영 영상을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의 공소시효는 7년에 불과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디지털 성폭력 아웃’(DSO) 하예나 대표는 “화장실 불법 촬영 영상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디지털 성폭력은 가해자가 불분명하고, 피해자 역시 혼자서 법정 싸움을 이어가기 어려워 처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가 언제 피해를 인지했는지 법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만큼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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