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2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초 ·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 발표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예체능 계열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임아무개(18)양과 친구들은 지난 2년간 전공 관련 동아리 지도 교사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학생들은 손으로 엉덩이를 치거나 가슴 옆쪽을 찌르는 교사의 추행이 끔찍하게 싫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니까”라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예체능 입학전형에 중요한 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특기사항’ 기재 내용은 동아리 지도교사의 권한이었다. 참다못한 임양은 30대 여자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네 생기부에 불이익이 될 일을 왜 만드냐.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 조용히 넘어가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이 사회 각층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여성들은 10대 시절 학교에서부터 성폭력에 ‘침묵하는 법’을 학습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대 여성들은 ‘교사-학생’, ‘남성-여성’ 등의 중첩적 위계 속에서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가 어른들의 ‘방관’을 경험한 학생들은 현실에 체념한 채 침묵하거나, 가해자를 알아서 피하는 ‘처신’을 체득하게 된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노골적인 성폭력은 바로 문제제기가 가능하지만, 언어적 성희롱이나 가벼운 신체접촉 등 ‘애매한’ 경우 동료 교사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며 “학생들이 도움을 청하기 마련인 젊은 교사들보다 가해 교사가 상급자인 경우가 많다 보니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친근감의 표시’라는 선생님의 설명에 혼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생 오아무개(19)씨는 고등학교 3년 내내 40대 남자 교사의 성희롱 발언에 시달렸다. 오씨는 “수업 중 화장실에 가는 친구에게 ‘빨간 거냐’고 묻는 발언에 반 아이들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불쾌하다’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며 “나만 예민해서 불쾌감을 느낀 것 같아 ‘선생님은 친근감의 표시로 그런 말을 한 거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가치관이 미처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성폭력 행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언어 성희롱 등 성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인가’ 고민하다가 뒤늦게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이란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며 “특히 부모님과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 (이런 혼란에)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에게 성폭력이 무엇이고, 자신이 겪은 피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20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은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대해 “페미니즘 교육은 체계적인 인권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박현이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은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며 “위계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애 위원장도 “현재는 성폭력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는 절차를 가르칠 뿐, 자신이 겪은 피해를 어떻게 표현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진 않는다”며 “반 성폭력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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