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16일(현지 시각) 제45회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1분39초의 세계 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러너스월드’ 화면 갈무리.
마라톤 기록이 처음으로 2시간1분대(2시간1분39초)에 들어섰다. 4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마라톤 세계 기록이 무려 1분18초나 줄어든 것이다. ‘마의 벽’이라 불리는 ‘2시간 벽’을 꼭 100초 남긴 기록이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지 관심이 쏠린다.
케냐 선수인 엘리우드 킵초게(34)는 16일(한국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8 베를린 국제마라톤에서 42.195㎞를 2시간1분39초에 달렸다. 지금까지 세계 기록은 2014년 같은 대회에서 케냐 선수 데니스 키메토가 세운 2시간2분57초였다. 킵초게는 이를 1분18초 앞당겨 세계 기록을 1분대에 진입시킨 최초의 마라토너가 됐다. 2016년에 세운 자신의 최고 기록(2시간3분5초)보다 1분26초나 빨리 달렸다.
국제육상경기연맹 누리집(www.iaaf.org) 등에서 살펴보면, 마라톤 기록이 2시간대에 들어선 것은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조니 에히스(미국)가 2시간55분18초의 기록을 세우면서다.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마라톤 기록은 2시간30분 이내로 진입했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직전 1935년 일본 도쿄에서 세운 세계 기록이 2시간26분14초였다.
2시간10분 대 벽을 깨뜨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1967년에 호주 선수 데릭 클레이턴이 일본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2시간9분36초를 기록해 처음으로 ‘10분대 벽’을 깼다. 손기정 선수 기록 이후 32년 동안 17분 정도 줄어든 셈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록은 꾸준히 단축됐지만, 단축 속도는 더뎠다.
‘5분대 벽’을 깨는 데는 거기에서 또 36년이 더 걸렸다. 케냐 선수 폴 터갓이 2003년에 베를린마라톤에서 세운 기록은 2시간4분55초로, 종전 기록을 43초나 줄여 눈길을 끌었다.
그 과정에 있던 국제육상경기연맹 공인 세계 기록의 변화 추이는 이렇다.
2002년 4월. 2시간5분38초. (할리드 하누치·미국)
2003년 9월. 2시간4분55초. (폴 터갓·케냐)
2007년 9월. 2시간4분26초.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2008년 9월. 2시간3분59초.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2011년 9월. 2시간3분38초. (패트릭 마카우·케냐)
2013년 9월. 2시간3분23초. (윌슨 킵상·케냐)
2014년 9월. 2시간2분57초. (데니스 키메토·케냐)
2018년 9월. 2시간1분39초. (엘리우드 킵초게·케냐)
그렇다면 ‘4분 대 벽’을 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5년이다. 2008년 에티오피아 선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3분59초로 아슬아슬하게 3분대로 진입했다. ‘3분대 벽’을 넘는데 또 6년이 걸렸다. 2014년 케냐 선수 데니스 키메토가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2분57초로 우승. 이번에 킵초게가 4년 만에 1분18초나 이를 앞당겨 1분대로 진입했으니 기록 단축 속도가 조금은 빨라진 셈이다.
그렇다면 ‘꿈의 기록’이라고 불리는 ‘마라톤 서브(SUB) 2’(마라톤 레이스를 2시간 안에 끝내는 것)는 가능할까? 이미 미국 학계에는 “기술의 발전이 마라톤 1시간대 주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논문이 나와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휴스턴 대학 연구진은 2016년 <스포츠 의학 저널>에 “여러 조건이 잘 맞물리면 1시간대 완주가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조건으로 든 것은 마라톤화와 페이스 메이커의 도움이다. 키메토가 2014년 2시간2분57초를 기록할 때 신은 마라톤화는 한 짝에 8온스(226.79g)였는데, 연구진은 “한 짝에 4.5온스(127.57g)짜리 마라톤화를 신으면 57초까지 기록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킵초게는 최근 6온스(170g)짜리 마라톤화를 신고 훈련했다. 연구진은 또 “마라톤 직선 주로에서 주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체력을 비축하는 전략을 잘 활용하면 기록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킵초게가 참여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브레이킹 2’ 프로젝트는 이런 ‘조건’을 최대한 갖춰 ‘2시간대 벽’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다. 2016년 12월 시작됐는데, 세계 정상급 육상 선수들과 함께 연구팀을 꾸려 2년 동안 최적의 훈련과 식이요법, 관련 용품을 제공했다.
이 실험의 일환으로 지난해 5월6일 이탈리아 밀라노 동북부의 국립 몬차 자동차경주장에서 열린 ‘브레이킹 2’ 레이스에서는 킵초게가 2시간25초를 기록하기도 했다. 도로가 아닌 자동차경주 서킷에서 달린 데다 페이스 메이커 국제 기준을 어겨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최고의 조건이 제공된다면 2시간 이내에 레이스를 마칠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다.
이 실험이 단순히 ‘기록’ 깨기에만 몰두하는 건 아닌 듯하다. 실험 현장에 참여한 물리학자 알렉스 허친슨은 최근 ‘인간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담은 책을 펴냈다. 킵초게는 ‘브레이킹 2’라는 기록 달성에 실패한 뒤 “하지만 뭐, 우리는 사람이잖아요”라며 씩 웃었다고 한다. (
▶관련 기사 : ‘인듀어-몸에서 마음까지, 인간의 한계를 깨는 위대한 질문’)
17일 나이키 공식 누리집은 첫 화면에 베를린 마라톤에서 뛰고 있는 그의 사진과 함께 “Crazy dreams make broken records. (미친 꿈이 기록 경신을 만든다)”란 문구를 실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