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산악대장(왼쪽 두번째)을 포함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한국인 대원들이 12일 네팔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왼쪽부터 원정에 참가한 임일진씨, 김창호 대장, 이재훈씨, 유영직씨.카트만두포스트 갈무리
무산소 등정과 신루트 개척 등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김창호(49) 등반대장이 히말라야에 잠들었다.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지난달 28일(한국시각)부터 미지의 험지로 꼽히는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13일 눈폭풍에 휘말려 원정대 9명 전원이 사망했다. 김창호 대장을 비롯해 유영직(51) 장비 담당, 이재훈(25) 식량·의료 담당, 임일진(49) 다큐영화 촬영감독 등 4명의 원정대와 인근을 트레킹하러 왔다가 격려차 합류한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 등 5명의 한국인이 포함됐다. 원정대는 11월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해발고도 7193m인 구르자히말에 새로운 길을 개척할 예정이었다.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높은 다울라기리 산군에 속한 구르자히말은 1969년 일본인 야쿠시 요시미가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지만 1970년대에도 산악인들이 폭설 피해로 숨지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김창호 원정대는 네팔의 포카라를 경유해 다르방(1070m)~팔레(1810m)~구르자 고개(3257m)~구르자카니 마을(2620m)~구르자히말 남면 쪽 케야스 콜라에 베이스캠프(3500m)를 설치한 뒤 정상을 정복하기로 계획했다. 루트 이름도 ‘원코리아’(one korea)로 정했지만 새 이름은 끝내 불리지 못했다.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에 성공하는 등 현재 활동하는 국내 등반가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고 산악인들은 평가한다. 김창호 대장은 2005년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 루팔벽을 오르며 처음으로 8000m급 봉우리 등정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6년 가셔브룸 1봉(8068m)과 2봉(8035m)을 단독으로 연속 등정하며 무산소 등정 도전의 막을 열었다.
2013년에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무산소로 완등한 뒤 그해 9월 열린 제14회 대한민국 산악상 대상을 받았다. 국내 최초 무산소 완등이자 세계 최단기간 완등 기록이었다. 그는 당시 시상식에서 “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은 의미가 없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자신의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삶이 녹아 있는 한마디였다.
‘2016 코리안웨이 강가푸르나 원정대’의 김창호 대장의 모습. 노스페이스 제공
김창호 대장은 2016년부터 또다른 도전에 나섰다.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시작으로 2019년까지 히말라야, 남미 안데스, 유럽 캅카스 등 세계의 고산에 한국길을 내는 ‘코리안웨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짐을 최소화한 뒤 베이스캠프에서 무산소로 빠르게 정상에 도전하는 등반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산악 전문가들은 이들이 정상 도전을 앞두고 적응기를 보내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가푸르나(해발 7455m) 남벽 신루트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김창호 대장은 2017년 5~6월에 걸쳐 ‘2017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를 꾸려 인도 히말라야 다람수라(6446m)와 팝수라(6451m)에서 새 루트를 개척했고 이번에 또다른 신루트 개척을 위해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프랑스 국빈 방문 중에 비보를 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의 근육만으로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산악인의 정신이야말로 자연을 존중하며 동시에 뛰어넘고자 하는 위대한 정신”이라며 “눈폭풍이 아홉명의 산악인을 영원히 산속으로 데려갔지만, 신루트를 개척하려 한 그분들의 용기와 투혼은 결코 묻힐 수 없다”고 애도했다.
이번 등반에서 장비를 담당했던 유영직 대원은 2008년 인도 시블링(6543m)과 2011년 네팔 마칼루(8643m)를 등반했고, 2013년 네팔 아마다블람(6859m) 동녘 신루트를 등반한 베테랑이다. 식량·의료 담당의 이재훈 대원은 2017년 인도 다람수라·팝수라 신루트 개척에서 김창호 대장과 함께했다. 임일진 감독은 2016년 산악인들이 산에서 맞는 최후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를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산에 인생을 건 이들의 비통한 죽음을 담았던 영화처럼 김창호 대장과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의 용감한 발길은 눈폭풍의 불운 앞에서 영원히 멈춰버렸다.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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