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공격의 대부분이 세터의 손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터를 ‘코트의 사령관’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득점하지 않고 주 득점원인 공격수를 돕는 보조자이기도 하다.
프로배구 남자부에서 만년 하위팀 우리카드(감독 신영철)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돌풍의 주인공이자 조력자인 세터 노재욱(26)을 지난 29일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났다.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못했던 우리카드는 공교롭게도 노재욱이 합류한 2라운드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노재욱은 “내가 왔다고 팀이 좋아진 것은 아니고 팀의 상승세에 탑승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어린 선수가 많은 젊은 팀인데 승리의 맛을 알게 되면서 더욱 무서운 팀이 되고 있다”고 최근 팀 분위기를 전했다.
노재욱은 2018~2019 시즌 타의에 의해 두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지난해 5월 현대캐피탈에서 나와 한국전력으로 이적했고, 이번 시즌 1라운드를 마친 지난해 11월에는 우리카드로 또 한차례 둥지를 옮겼다.
그는 “이미 적응한 곳을 떠나면 당연히 편하진 않지만, 환경만 다를 뿐 배구하는 것은 똑같다”며 “다른 스타일의 배구와 다양한 공격수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등 여러가지 도움도 됐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배울 것은 배우고 안좋은 습관들은 버리려 한다”며 “아직도 부족하니까 많이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재욱의 볼배급 스타일은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가 많다는 평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일부러 의외성을 만들려다 보면 오히려 상황을 힘들 게 할 수 있다. 공격수를 믿고 쉽게 생각하려 한다”며 “신영철 감독님께서 공격수 성향에 맞게 정확히 띄우는 것을 원하시는 만큼 거기에 맞추려 한다”고 했다. 상대의 낮은 쪽을 우선 보고, 공격수의 컨디션이 좋은 방향 등을 고려하는 등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한다는 그의 설명이다. 일부러 상대를 속이기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선택이 의외성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세터는 공격수들의 성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높이 올려주는 공을 좋아하는 공격수가 있는 반면, 상대 블로킹을 따돌리는 빠른 토스를 좋아하는 공격수도 있다. 그는 “이제 우리 공격수들과 어느 정도 맞춰가고 있지만 연습기간이 짧다 보니 아직 완벽하진 않다”며 “더 다가가려고 노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2014년 데뷔한 프로 5년차 노재욱은 우리카드 선수단에서 어느 덧 중견에 속한다. 우리카드는 윤봉우(38), 리버만 아가메즈(33) 김시훈(31) 등 노장뿐 아니라 나경복(24) 한성정(22) 황경민(22) 등 젊은 층이 주공격수로 성장하고 있다. 노재욱은 “선수층이 젊은데 최근 좋은 성적이 나와 시너지 효과가 큰 것 같다”며 “딱 중간인데 위아래로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재욱은 그러나 자만심을 경계했다. “1위와 승점 1점 차이지만 예전과 다른 것은 없다. 지금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앞경기만 보고 달려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동료들에 대해 “아무 생각 안하고 매경기 즐기면서 같이 뛰었으면 좋겠고, 모두 부상없이 한 시즌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며 “이기는 배구를 하다보면 즐겁고 자신들의 실력도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인천/이찬영 기자
lcy100@hani.co.kr, 사진 우리카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