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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없는 세상 위해 사상 첫 ‘보호자 없는 마라톤’ 도전해요”

등록 2019-10-27 19:25수정 2019-10-28 02:34

[짬] 시각장애인 한동호씨

시각장애인 한동호씨. 김창금 선임기자
시각장애인 한동호씨. 김창금 선임기자

편견이 깨져 나갔다. 시각장애는 완전 실명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수점 두 자릿수의 약시도 있다. 한동호(32)씨는 0.03의 약시다. 빛을 감지할 수 있고, 바로 앞 사람의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박박 긁힌 유리를 대고 보는 것처럼 흐릿하다. 그가 다음 달 10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인 독립 완주에 도전한다. 가이드 러너 도움 없이 비장애인 대회에서 혼자 뛴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5㎝ 정밀도의 위치 측정이 가능한 지피에스(GPS)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 ‘웰컴드림글래스’라는 고글을 사용한다. 가슴에 단 3D 카메라가 수집한 정보 등이 원격 서버에 송신돼 빅데이터 처리를 거친 뒤 다시 고글의 이어폰으로 전달된다. “전방에 오른쪽 커브길” “노면 불규칙” 등 내비게이션 정보부터 사람과 사물에 근접할수록 소리가 빨라지는 경보음까지 다양한 신호를 받는다. 데이터 송수신에 필요한 배터리팩까지 짊어지면 장비 무게는 1㎏ 안팎이다.

2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한씨는 “최근 한강 자전거 길에서 코치와 함께 36㎞를 달리면서 최종 점검을 마쳤다. 다음 주 출국해 현지에서 적응훈련만 잘하면 42.195㎞를 3시간 30분 안에 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혼자 달리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다치더라도 시각장애인들한테 희망을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바로 앞 얼굴 형체만 파악하는 약시

GPS, 움직임 감지 센서 등 활용해

내달 10일 아테네 마라톤 ‘독립 질주’

후천적 장애 뒤 운동으로 자신감 회복

수영 사이클 철인삼종 이어 마라톤까지

“부딪히고 넘어져도 달릴 수 있어 좋다”

웰컴저축은행 ‘런 포 드림’ 프로젝트

그는 2005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레베르시신경병증(LHON) 발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보도 턱에 걸려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자 두려워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냈단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트니스센터에 나가 하루 4~5시간 운동을 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만 했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는데 장애인이 되면서 중독에 걸린 것처럼 체력훈련을 하고 트레드밀 위에서 달렸다. 희한하게 몸이 탄탄해지면서 위축됐던 마음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몸과 마음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때부터 장애인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목표를 키웠고, 수영대표로 2010·2014 장애인 아시안게임, 2016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그 뒤 사이클에 입문했고, 지난해는 철인3종경기에도 도전했다. 내친김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웰컴저축은행의 사회공헌활동 ‘런 포 드림’ 프로젝트와 결합하면서 꿈을 이루게 됐다.

한동호씨. 김창금 선임기자
한동호씨. 김창금 선임기자

4월부터 두 명의 코치와 함께 평일 10~15㎞, 열흘에 한 번 30㎞를 주파해 6개월을 투자했다. 지난달에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4회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마라톤대회’에서 실제 장비를 착용하고 10km 구간을 50분에 달렸다. 수영 선수 출신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도와주는 원치완(28)씨는 “워낙 쾌활하고 열정적이다. 장애인을 보는 고정 관념을 허물겠다는 의지를 갖고 달리는 것 같다. 내가 가졌던 편견도 많이 깨졌다”고 말했다.

한씨의 출전을 허용한 아테네 마라톤 조직위원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인단다. 가이드 러너의 도움을 받는 시각장애 마라토너는 있지만 홀로 도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장비 개발에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가 자문하는 등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일반 시각장애인을 위한 범용 제품과 사용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미래의 일이다. 웰컴저축은행 쪽은 “한동호 선수에게 최적화된 장비다. 빅데이터 처리를 위한 서버는 아테네 현지에서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8일 출국하는 한동호씨는 1m82의 날렵한 몸을 자랑한다. 그는 “운동이 정말 좋다. 장애인들이 집에 있지 말고 자꾸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동네 복지관이라도 나가면 최소한 1~2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뤘다”는 그의 신경은 물론 시각장애인 최초의 마라톤 “홀로 완주”에 집중돼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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