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이 ‘신명호는 놔두라고’ 지시하고 있다. 유튜브 ‘신명호는 놔두라고’ 갈무리
“농구는 몰라도 신명호는 안다”
신명호(37·전주 KCC)는 유튜브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농구 선수다. 2017년 올라온 ‘신명호는 놔두라고’라는 제목의 영상 덕분이다.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이 작전타임 때 선수들에게 “신명호는 놔두라고 40분 내내 얘기했는데…”라고 화를 내며 시작하는 이 영상은 조회수가 320만을 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영상 속 선수들은 신명호가 슛을 시도해도 막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명호의 3점슛은 매번 빗나간다. 당시 같은 팀이었던 전태풍이 신명호에게 패스한 뒤 좌절하는 모습은 영상의 하이라이트다. 신명호는 이 영상 하나로 유튜브 스타가 됐다.
설 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전주 케이씨씨(KCC) 사무국에서 신명호를 직접 만났다. 그는 유튜브 스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주뼛주뼛 사무국에 나타난 그는 연습체육관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인터뷰 내내 목소리도 조곤조곤했다. 신명호는 학창시절부터 나서는 걸 싫어했고, 선수생활을 시작할 때도 ‘큰 그림’보다는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고 한다. 농구를 안 했다면 평범한 회사원이 됐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은퇴 후에는 유튜브 인지도를 이용해 유튜버에 도전하는 건 어떠냐?”는 농담 섞인 질문도 준비했지만, 만난 지 5분 만에 절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신명호’를 입력했을 때 모습. 자동완성에 ‘신명호는 놔두라고’가 뜬다. 포털사이트 갈무리
■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신명호는 초등학생 때 처음 농구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잘해서 육상대회에 나갔다가 선생님의 눈에 들어 농구부에 들어간 게 계기였다. 전남 여수의 작은 학교. 신명호는 체육관이 없어 길바닥에 공을 튕기면서도 그저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하는 게 좋았다. “당시엔 꿈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고…. 장래희망엔 대통령, 경찰을 썼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그때는 보통 그렇잖아요”
중학교에 진학한 뒤 신명호는 농구와 멀어졌다. 학교에 농구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부모님 눈치도 보였다. 그런 신명호를 농구로 다시 이끈 건 체육 선생님이었다. 신명호가 2학년 때 학교에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농구부를 만들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그의 레이더망에 신명호가 들어왔다. 결국 신명호는 여수 여천중학교 농구부 창단 멤버가 됐다. 이때부터 신명호의 농구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고, 전국대회에도 나갔다.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농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여수는 작은 도시였고, 농구를 할만한 고등학교가 없었다. “광주나 다른 대도시로 가려고 했어요. 당시에는 선수 다른 학교에 가려면 동의서가 필요했는데 동의를 못 받아 여수에서 1년을 유급했죠”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이번에도 체육 선생님이었다. “중학교 때 농구단을 만들었던 선생님이 다른 고등학교로 가셨고, 그 학교에서 또 농구단을 창단하셨어요” 신명호는 그렇게 여수전자화학고 농구부 창단 멤버가 됐다. 이때 포지션도 가드로 바꿨다.
대학교 진학은 운이 따른 편이었다. 당시 신명호는 전국체전 진출을 앞두고 도 평가전을 치르고 있었다. 상대 학교는 목포 전남제일고. 지금은 은퇴한 우승연(전 kt)이 뛰는 곳이었다. 우승연은 당시 경희대 최부영 감독의 눈에 들어 경희대 진학이 확정적이었다. 경기 당일 최부영 감독도 우승연을 관찰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신명호는 대활약을 펼치며 최부영 감독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결국 신명호는 우승연과 함께 경희대에 진학했다.
용인 기흥구 전주 KCC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신명호. 어느덧 37살에 접어들었지만 신명호는 여전히 탄탄한 몸을 자랑한다.
슈팅 자세를 취하는 신명호. 신명호의 수비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지만 공격력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 내 이름은 신명호, 이적을 모르는 남자지
전주 케이씨씨와 신명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신명호는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프로 데뷔 뒤 12시즌째 줄곧 전주 케이씨씨에서 뛰고 있다. 흔치 않은 원팀맨이다. 2016년에는 주장으로서 팀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도 이끌었다.
신명호는 2007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때 당시 케이씨씨 감독이던 허재의 깜짝 지명을 받았다. 1라운드 6순위였다.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였죠. 드래프트 동기 중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케이씨씨의 ‘6번 픽’은 각종 농구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신명호도 부담을 느꼈다. “선배들 중에도 제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 많을 정도였어요” ‘프로’라는 이름에서 오는 압박감도 컸다. “생활면에선 어려움이 없었지만, 연봉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 도태되면 바로 아웃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으니 그런 부분에서 냉정한 느낌을 많이 받았죠”
2007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명호(왼쪽)와 허재 감독. 케이비엘 제공
힘을 준 건 선배들이었다. “제가 왔을 때 좋은 형들이 많았어요. 서영권 선배, 이동준 선배, 강은식 선배 등…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제가 촌놈 같은 면이 있었는데 많이 가르쳐주셨죠” 그는 선배들의 조언을 잔소리가 아닌 보약으로 여겼다. “그 당시에는 제가 뭐든 배워야 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형들이 매우 커 보였던 것 같아요”
신명호는 팀의 단합을 중시하는 선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했다. “프로에게 우승은 당연한 목표지만, 선수들이 다 같이 팀을 생각하며 뛰는 것도 중요하죠. 주장 (이)정현이를 주축으로 저희 팀은 단단하게 뭉쳐 있습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기억을 더듬을 때도 그는 팀을 먼저 떠올렸다. 신명호는 가장 좋았던 장면으로 2008∼2009 챔피언결정전 우승 때를 뽑았고,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2012∼2013시즌 팀이 최하위에 머무를 때를 꼽았다.
2010∼201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뒤 세리머니를 펼치는 신명호. 케이비엘 제공
■ “상대가 신명호를 놔둬도, 신명호는 상대를 놔두지 않는다”
‘신명호는 놔두라고’ 영상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한 행동이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최대한 영상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듯 했다.
사실 신명호는 수비에 특화된 선수다. 팬들은 상대 공을 잘 빼앗는 그를 ‘신스틸러’라고 부른다. 케이비엘(KBL) ‘수비 5걸상’을 3차례 받았고, 2016년 한 매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국인 선수가 선정한 최고의 1대1 수비수’에 선정됐다. 평소 내성적 성격이지만 수비를 할 때는 악바리처럼 끈질기게 상대에게 달라붙는다.
그래서 신명호의 기사에는 “상대가 신명호를 놔둬도, 신명호는 상대를 놔두지 않는다”는 댓글이 달린다. 팬들은 그의 수비를 두고 “그야말로 질식 수비”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2008∼2009 챔피언결정전 때는 “수비로 경기를 뒤집어 버리는 유일한 선수”, “수비가 재밌다는 걸 알려주는 선수”라는 찬사가 나왔다.
“많이 뛰고 생각을 많이 하고, 보면서 많이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선수마다 장단점이 있고 좋아하는 행동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연구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됐죠”
“어딜 보시는 거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2016년 2월13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프로농구 전주 KCC와 원주 DB의 경기에서 신명호(왼쪽)가 상대 공을 빼앗고 있다. 케이비엘 제공
2014∼2015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수비 5걸상을 받는 신명호. 케이비엘 제공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든 신명호는 은퇴 뒤 지도자 변신도 고려 중이다. “어렸을 땐 감독님이 무섭기만 했는데 요즘은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안돼 보일 때가 많아요. 지도자가 힘든 일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건 또 다른 것 같아요”
신명호는 농구 말고는 뭘 좋아할까? 다섯살 쌍둥이 아빠의 답은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였다. “소소하게 사는 것 같아요. 아내랑 맛있는 거 먹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돌아오고…. 애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니까 항상 미안하죠. 아빠를 자주 찾는데….” 그래도 최근엔 아이들이 티브이에 나오는 신명호 선수를 알아본다고 했다.
“팀에서 제일 오래 있었는데, 제가 가진 실력에 비해 많이 좋아해 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얼마 안 남은 선수생활이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팀에 많은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신명호는 이날도 팀을 생각하며 다시 연습장으로 향했다.
용인/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 신명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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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전주 케이씨씨(K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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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83년 10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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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체중 : 183cm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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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포인트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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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1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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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 2007년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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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 케이비엘 정규리그 우승 1회(2016)
케이비엘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2009, 2011)
케이비엘 수비 5걸상 3회(2009, 2015, 2016)
케이비엘 식스맨상 1회(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