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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농구 전설 양동근 은퇴… 그는 한국 농구의 역사다

등록 2020-04-01 17:28수정 2020-04-02 02:45

17년 프로생활 뒤로 하고 은퇴, 지도자 도전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프로 선수의 교과서
유재학 감독과 모비스 전성기 이끌었던 전설
은퇴식서 “그동안 사랑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
울산 현대모비스 양동근이 1일 서울 강남구 케이비엘(KBL)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 현대모비스 양동근이 1일 서울 강남구 케이비엘(KBL)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남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 현대모비스 양동근(39)이 은퇴했다.

믿기 힘든 소식이다. 양동근은 올 시즌 40경기에 나서 평균 10득점·4.55도움을 기록했다. 평균 출전시간도 28분24초로 국내 선수 가운데 12위다. 대부분의 팬이 “양동근은 적어도 1, 2년은 더 뛸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그는 모든 예상을 뒤로하고 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은퇴했다.

■ 양동근, 프로농구의 현재이자 역사

17년간의 프로생활. 정규리그 665경기 출전, 7875득점, 3344도움, 980스틸. 챔피언결정전 6회 우승, 정규리그 5회 우승,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4회, 신인왕…. 양동근에 따라붙는 기록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타이틀과 숫자만으로는 양동근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양동근과 14년을 함께한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은 그를 “모든 선수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긴 시간 최고로 뛰기 위해선 농구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동근이는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등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수다.”

양동근은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한번의 잡음도 없이 긴 여정을 마쳤다. 그야말로 프로 선수의 교과서였다.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현대모비스에서만 보낸 로맨티스트를 팬들은 사랑했다.

성실함은 기복 없는 활약의 바탕이었다. 2004∼2005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입단한 양동근은 첫 시즌 신인상을 차지했다. 신인상을 받은 선수들이 많이 겪는 ‘2년 차 징크스’도 없었다. 2005~2006시즌 그는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당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던 삼성의 서장훈과 함께 공동 최우수선수로 꼽혔다. 3번째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이끌며 만장일치 최우수선수에 올라 양동근 시대를 알렸다. 양동근이 가세하기 전 리그 10위였던 현대모비스는 이후 무적의 팀이 됐다. 팬들은 그를 동명 배우의 출연작 이름을 따 ‘바람의 파이터’라고 불렀는데, 빠른 속도와 기습 3점슛 플레이에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양동근이 2017년 3월19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 레이업을 시도하고 있다.울산/연합뉴스
양동근이 2017년 3월19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 레이업을 시도하고 있다.울산/연합뉴스

■ 작은 키도, 부상도…‘철인’은 다 넘어섰다

물론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그는 서울 용산고 입학 당시 키가 168cm로 수비 전문 식스맨이었다. 단신에 눈에 띄지 않는 교체 멤버였던 그를 원하는 대학 농구팀은 없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 고민도 했다. 하지만 온갖 시련 뒤 최후에 승리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는 불굴의 의지로 돌파했다.

수비에 공격까지 장착한 선수가 되기 위해 더 연습했고, 한양대 입학 뒤에도 피나는 훈련을 쉬지 않았다. 폭발적인 기량 향상에 고교 무명 선수는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에 입성하는 성취를 이뤘다. 당시 ‘빅3’였던 연세대·고려대·중앙대 이외의 대학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건 그가 처음이었다.

2004년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케이씨씨(KCC)에 지명된 양동근. 그는 팀 간 약속에 따라 현대모비스로 곧바로 트레이드됐다. 연합뉴스
2004년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케이씨씨(KCC)에 지명된 양동근. 그는 팀 간 약속에 따라 현대모비스로 곧바로 트레이드됐다. 연합뉴스

유재학 감독과 만난 것은 2막의 시작이었다. 유 감독은 슈팅 가드에서 포인트 가드로 그의 역할을 바꾸었고, 양동근은 이번에도 무던히 새 보직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며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자리 잡았다. 경기 중 레이업에 실패하면, 끝난 뒤 홀로 레이업 300개를 연습했다는 일화는 그의 근성을 보여준다.

‘철인’도 부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6∼2017시즌 전자랜드와의 안방 개막전에서 왼쪽 손목이 부러진 것은 불운이었다. 재활에만 3∼4개월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 하지만 수술 뒤 찾아간 곳은 팀 벤치였다. 재활 중인 손목을 붙들고 원정 경기까지 따라다니는 리더의 존재에 선수들은 힘을 냈다. 하위권으로 추락할 것 같았던 현대모비스는 양동근과 부상으로 데뷔가 늦어졌던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이종현(26)이 돌아오자 플레이오프 진출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 유재학 감독과 현대모비스의 끈

양동근이 은퇴 기자회견에서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동근이 은퇴 기자회견에서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재학 감독은 양동근과 ‘입사 동기’ 사이다. 양동근이 입단하던 2004년 유재학 감독도 전자랜드에서 이적했다. 리그 하위권 시절, 팀원들은 끼리끼리 밥을 먹었고, ‘무언가 해보자’는 투지는 부족해 보였다. 입사 동기인 스승과 제자는 거침없이 체질을 바꿔 나갔다. 은근한 카리스마의 유 감독과 새내기 양동근의 패기는 각개전투하던 선수들을 ‘원팀’으로 묶어냈다. 2005∼2006시즌부터 5년간 정규리그 4회 우승, 챔피언결정전 2회 우승의 놀라운 기록은 ‘두 콤비’의 힘이 바탕이었다. 2012∼2013, 2013∼2014, 2014∼2015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3회 연속 우승으로 정점에 올랐다.

이젠 양동근은 다시 3막의 갈림길에 섰다. 유 감독도 “아쉽지만 이제는 미래의 양동근을 생각할 때”라며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줬다.

양동근은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비엘(KBL)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사랑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 어디를 가든 열심히 하겠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난 코트는 허전하지만, 현대모비스에서 영구결번된 등 번호 6번은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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