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한국시리즈 때 정규리그 MVP로 호명된 최동원. 한겨레DB
‘한국시리즈’ 하면 두루두루 회자되는 영상이 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려 환호하는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2011년 9월14일 별세)의 모습이다.
최동원은 1984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4선승제)에서 롯데가 거둔 4승을 모두 책임졌다. 1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완봉승(9이닝 7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거뒀고 단 이틀만 쉬고 등판한 3차전에서도 12탈삼진을 잡아내는 등 9이닝 6피안타 2실점의 완투승(3-2, 롯데 승)을 올렸다. 또다시 이틀밖에 못 쉰 최동원은 5차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을 소화했다. 결과는 롯데의 2-3 패배.
다음날 열린 6차전에 최동원은 뜻밖에도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투구. 하루의 휴식 뒤 열린 7차전에서 그는 다시 선발로 등판했다. ‘투혼’으로 포장된 ‘혹사 그 이상의 혹사’였다. 최동원은 이날 다시 9이닝을 책임졌다. 10피안타 5탈삼진 4실점. 6-4 롯데의 승리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 투구 기록. KBO 제공
최동원은 열흘 동안 5경기 40이닝을 소화(팀 전체 이닝의 3분의 2)하면서 610개의 공을 던졌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는데도 정작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히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엠브이피를 결정하는 기자단 투표가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벌어지던 잠실야구장 기자실에서 동시에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정규리그 엠브이피 투표 때는 롯데가 3-4로 뒤진 8회초 1사 1,3루에서 유두열이 역전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리고 6-4가 된 상황에서 최동원이 여전히 마운드에 있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마음은 한국시리즈 4승이 거의 굳어져 가던 최동원에 쏠렸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타격 3관왕에 오른 이만수(삼성)가 후보에 있었지만 기자들은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한 최동원을 찍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오비(OB) 베어스를 피하기 위해 져주기 게임을 했다는 의혹도 이만수에게 감점 요인이 됐다.
이윽고 진행된 한국시리즈 엠브이피 투표. 롯데 마운드에서 ‘나 홀로’ 분투한 최동원이 당연히 수상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엠브이피를 한 선수에게 몰아줄 필요가 있느냐”는 기자실 분위기에 따라 ‘나눠먹기식’으로 역전 3점 홈런을 친 유두열이 한국시리즈 엠브이피로 선정됐다. 당시 유두열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21타수 3안타(타율 0.143), 1홈런 3타점 2도루에 불과했다. 최동원의 성적은 4승1패 평균자책 1.80(40이닝 투구 9실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는 완전히 다른 데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기자단 투표가 이뤄지는 바람에 최동원은 시리즈 1할대 타자에 밀려 한국시리즈 엠브이피를 놓치고 말았다. 1984년 한국시리즈는 롯데의 우승을 위해 오른 어깨를 희생한 최동원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기자들의 잘못된 판단이 기록으로 영원히 남는 한국시리즈 엠브이피 역사를 바꿔놓은 셈이다. 물론 최동원의 위대한 업적을 상 안에 가둬둘 수는 없겠지만.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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