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KGC인삼공사와 흥국생명의 경기에서 흥국생명의 김연경이 공격에 성공한 뒤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배구연맹 제공
“캡틴, 오 마이 캡틴! 섬뜩한 항해는 끝이 났고, 배는 모든 고난을 견뎌냈으며 우리가 찾던 소중한 것 또한 얻어냈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교를 떠나는 키팅 선생님을 향해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며 읊었던 시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이 시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좌초 위기에 몰렸던 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캡틴’ 김연경 때문이다. 여자배구 최다 연승 기록인 15연승을 눈앞에 둔 지난 5일, 지에스(GS)칼텍스에 2-3 리버스 스위프패를 당한 흥국생명은 이 경기서 외국인 라이트 루시아 프레스코가 부상으로 빠지는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된다.
설상가상, 그다음 경기인 13일 한국도로공사전에는 주포 이재영이 고열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면서 결장하고, 덩달아 쌍둥이 동생 이다영도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경기에서 빠지면서
0-3 셧아웃 패를 당했다. 시즌 첫 연패였다. 쌍둥이 자매가 빠진 경기서 김연경은 홀로 21득점(공격성공률 48.78%)하며 분투했지만, 일등항해사가 빠진 배가 제대로 항해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 경기 뒤
이다영의 결장이 팀 내 불화 때문으로 드러났고, 이는 한동안 배구계 최대 이슈가 됐다.
시간의 압박이 있지만 외국인 선수 문제는 구단에서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하지만 선수들 간의 호흡이 여느 운동보다 중요한 배구에서 선수 갈등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배구계에서 흥국생명이 위기에 빠졌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난파 직전의 배를 구한 건 캡틴이었다. 연패를 끊어야 하는 중요한 경기였던 18일 IBK기업은행전에서 3-0 완승을 거둔 뒤 김연경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선수로서 각자 책임감으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 최대한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해서 팀이 우승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쿨하게’ 불화설을 인정했다.
그가 이날 제일 강조한 것은 ‘프로정신’이었다. 단체 종목에서 선수들 간의 문제는 발생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경기력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캡틴의 ‘공개 선언’이었다. 이 경기서 김연경은 24득점(공격성공률 59.38%)을 올리며 공격의 뱃머리에 섰다.
캡틴의 일갈 때문이었을까. 연패를 끊은 흥국생명은 25일 KGC인삼공사전에서 3-2 접전 끝에 귀중한 승리를 따내며 2연승을 달렸다. 김연경은 34득점(공격성공률 58.82%)으로 또다시 선봉에 섰다. 이재영도 덩달아 살아나 31득점을 올렸다. 그동안 부상으로 부진했던 김미연도 7점을 뽑아냈다. 여기에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세터 이다영도 풀세트를 소화하며 53개의 세트에 성공했다.
위기에 빠진 흥국호를 구한 캡틴 김연경. 배구만 잘해서 ‘김연경’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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