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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내가 넘는 것은 바가 아니라 공포다”

등록 2021-02-19 05:59수정 2021-02-19 10:51

[도전 2021] 장대높이뛰기 일인자 진민섭 “경쟁자는 나 자신”

빌린 장대로 5m80㎝ ‘한국신기록’
도쿄서 10㎝만 더 끌어올린다면
종목 첫 올림픽 메달 노릴 수 있어

“체력, 특히 스피드 올리는데 중점
대회 연기? 덕분에 훈련시간 벌어”
꾸준한 연습으로 쌓은 ‘대담함’
도쿄 하늘서 ‘절정 기량’ 폭발 기대
러닝 훈련 중인 장대높이뛰기 선수 진민섭. 김도균 코치 제공
러닝 훈련 중인 장대높이뛰기 선수 진민섭. 김도균 코치 제공

“내가 넘어야 하는 것은 바가 아니라 공포다.”

다가오는 도쿄올림픽에서 장대높이뛰기 메달을 노리는 진민섭(29·여수시청).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힘이 붙어 있었다. 현재 대구에서 몸만들기가 한창인 진민섭은 한국 장대높이뛰기 최강자다. 지난해 5m80㎝를 뛰어넘어 개인 통산 8번째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그가 날아오르면 한국 기록이 깨진다.

한국 선수가 장대높이뛰기에서 올림픽 메달을 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진민섭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다. 현재 기록에서 10㎝만 더 올리면, 메달권으로 접어든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6m15㎝를 넘어 세계 신기록을 26년 만에 갈아치운 ‘인간새’ 아르망 뒤플랑티스(22·스웨덴)가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지난해 기록을 기준으로 2위는 미국의 샘 켄드릭스(6m02㎝). 세계 1·2위가 6m 바를 넘지만, 3위는 제이콥 우튼(미국)으로 그의 기록(5m90㎝)은 뚝 떨어진다. 진민섭이 5m90㎝를 목표로 삼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진민섭은 “체력과 스피드를 올리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전신의 근육을 써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일과는 단순하다. 오전 8시쯤 기상해 운동, 또 운동이다. 특히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스피드다.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바 쪽으로 달려가다 장대에 힘을 실어야 기록이 더 좋아진다. 여기에 공포감을 이겨내는 ‘대담함’은 진민섭의 강점이자, 더 키워야 할 키 포인트다.

“장대높이뛰기는 위험한 운동이다. 달리다가 장대를 꽂는 순간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때 무서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자세가 나오면 좋은 기록이 안 나온다. 장대가 덜 휘는 것이다. 나도 항상 공포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공포감을 이겨내는 순간 종이 한장 차이의 기량이 뿜어져 나온다.”

진민섭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김도균 코치 제공
진민섭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김도균 코치 제공

대부분의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이 멀리뛰기부터 시작한 것처럼 진민섭도 초등학생 때까지 멀리뛰기 선수였다. 처음부터 성격이 대담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엔 무서웠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이 답이었다”면서 “지금은 대담한 성격이라고 스스로 판단할 정도로 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진민섭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계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지난해 3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뱅크타운 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5m80㎝를 넘어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장대는 자신의 것이 아닌 남으로부터 빌린 장대였다. 평소에는 별 문제 없이 비행기에 장대를 실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수하물 규정이 강화돼 비행기에 실을 수 없게 된 것. 맨몸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진민섭은 결국 빌린 장대로 한국 신기록까지 세웠다. 이때 김도균 코치는 왕복 3000㎞ 거리를 50여 시간 운전해 장대를 빌려왔다. 손에 익지도 않은 다른 선수의 장대로 이뤄낸 올림픽 출전이라 더욱 극적이었다.

진민섭은 “평소에도 공문을 보내는 등 복잡한 절차에 의해 장대를 싣긴 했지만, 당시엔 안 된다고 해서 당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기록이 나와 기쁘다. 지금은 항공사가 도움을 줘 싣는데 문제가 없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코로나19로 인해 1년 늦춰진 올림픽은 그에게 어떤 변수가 될까. 각종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김도균 코치는 “시합이 없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며 “진민섭의 최근 성적이 좋기 때문에 특별히 주문하는 것 없이 목표 의식을 심어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멘탈적인 부분이 메달권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 코치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일까. 김 코치의 우려와 달리 진민섭은 오히려 “시간을 벌었다. 덕분에 훈련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메달을 따기 위한 각오가 더 불타오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경쟁자는 누구일까. 그는 “나 자신”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를 이기지 않고서는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내 안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많은 응원을 보내달라”고 각오를 다졌다.

도쿄의 하늘을 가로지를 ‘강심장’ 진민섭의 비상이 기대된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2020년 7월 4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서 장대높이뛰기 1위를 차지한 진민섭. 대한육상연맹 제공
2020년 7월 4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서 장대높이뛰기 1위를 차지한 진민섭. 대한육상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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