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복자성직수도회 ‘서원식’ 현장
자신 버리고 봉사헌신 삶 약속…네청년들정식 수도자 길로
지켜보는 이들 눈물 훔치자 “소유욕 버리고 하나되어 기뻐”
“형제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께서 친히 가르치시고 모범을 보여 주신, 완전한 정결과 순명과 가난의 생활을 영구히 사랑하고 실천하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형제들은 복음과 교회의 정신을 성실하게 지키고, 형제들이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회칙을 실천하며 교회를 위하여 영구히 헌신 봉사하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2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이촌2동 새남터성당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수도자 종신서원 예식에서 주례를 맡은 수도회 총원장의 물음에 제대 앞으로 나온 수도자들이 답했다.
한진욱(30) 대건 안드레아, 이동철(29) 베드로, 김동욱(28) 다니엘, 류재형(33) 야고보. 이들 네명의 청년들은 80여명의 선배 수도자들과 1천여명의 축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된 이 예식을 통해 영원히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이들은 이제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갖거나 멋진 아파트에서 살며 고급차를 굴리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독신 수도자로서 오직 봉사와 헌신으로 일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좀 더 잘 살아보려는데만 매진하며 경제가 어려워진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는 세상에서 이 준수한 청년들은 왜 스스로 ‘가난한 삶’을 자처했을까.
이곳 새남터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가톨릭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유교 국가인 조선의 국기를 흔드는 국사범으로 몰려 백사장에 피를 뿌린 순교의 현장이다. 하나같이 자신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는 세상에서 네명의 청년들은 왜 그런 ‘죄인’을 자처하고, 하나같이 자기 살 길과 자기 승리의 길만을 가는 세상에서 자기를 버리는 삶을 택한 것일까.
대부분의 수도회가 외국에서 설립된 것과 달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국내에서 자생한 최초의 남자수도회다. 설립자인 방유룡(1900~86) 신부는 한국인의 전통과 정신세계에 맞는 수도회의 필요성을 느껴서 외국에서 한국에 진출한 기존 수도회에 입회하는 대신 조선시대 순교자들의 정신을 따라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새로운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래서 이 수도회는 동양적 영성의 색채가 강하다. 방 신부의 호는 불교에서도 가장 근본 진리인 ‘무아’(無我)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지향하는 최종 경지도 ‘면형무아’(麵形無我)다. ‘면형’은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 때 받아 모시는 성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면형무아는 자신을 비우고 비워 무아와 허무의 경지에까지 내려가는 겸손을 통해 성체 안에 살아계신 주 예수와 하나 되는 경지로서, 순교를 통해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한 한국 순교자들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제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워가는 세속인들과 달리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가는 삶을 걸으면서 누군가는 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병원에서 봉사하고, 누군가는 이곳 새남터 성당에서 신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누군가는 피정을 통해 세속인들의 휴식과 영적성장을 도와 주는 등 수도자로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네 서원자들이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는 뜻으로 온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대 앞에 엎드렸다. 종신서원자들에게 총원장은 백색 도포를 주었다. 수도회에 입회해 수도생활의 예절을 익힌 지원기 1년과 공동체 생활의 실무를 배운 청원기 1년, 수련기 1년, 유기서원기 4년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정식으로 수도자가 되었다는 징표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듯 하얀 도포를 걸치자 제대 앞에 앉아있던 수도회 선배들이 내려와 이들을 깊은 포옹으로 맞아들였다. 이제 세속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예식장의 여신도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수도자들은 어느 신혼부부보다 더욱 더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류재형 야고보는 “가난한 게 힘들어 보일 수 있지만 소유에 집착하면서 고통이 시작된다”면서 “소유욕을 떨쳐버리고 하나되는 게 큰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말했다. 이동철 베드로는 “세속인들과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세속인들이 누릴 것을 누리지는 않지만 봉사하면서 영혼이 구원되는 것에 행복해하며 인간이 진정으로 누려야 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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