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신드롬’ 배경 뭔가
각박한 사회 ‘새로운 삶의 가치’ 갈망 표출
“저런 분이 있어야 하는데…” 아쉬움도 커
명동성당을 향한 기나긴 추모행렬은 19일에도 변함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모 열기가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가히 ‘김수환 신드롬’으로 불릴 만하다. 전쟁영웅이나 대중스타가 아닌, 종교지도자에게 이념과 계층, 종교의 벽을 넘어 수많은 국민이 이처럼 남다른 추모의 마음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는 등 마지막까지 생명 존중과 사랑을 실천한 그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과 삶의 가치를 발견한 점이 추모 열기를 달구는 요소라고 분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위기로 삶이 어려워진데다가 신자유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강력한 돈의 위세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이 김 추기경에게서 돈 이전에 정신이나 도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낸 것”이라며 “김 추기경의 선종이 그런 것에 대한 잠재돼 있던 그리움을 밖으로 표출시켰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도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 살리기도 안 되고,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드러난 사회 양극화의 현실과 약자 무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이웃을 사랑하라며 나눔을 실천했던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로 분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물론, 이런 추모 열기의 뒤에는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권위’를 벗어던진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모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신자와 대중들에게 자신의 방문을 열었고, 또한 그들과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등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혹은 강론을 통해 그와 만난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그의 얼굴과 말투에 스스로 벽을 허물었다.
또한 시점과 장소에 따라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줄 아는 그의 현장 감각은 그를 동시대인들의 아픔과 같이하도록 했다. 김 추기경의 비서실장을 했던 허근 신부는 “김 추기경은 무엇보다 ‘경청’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신부나 목사들이 외부에 강론이나 설교를 할 때는 성경 구절만을 준비해 가기 마련인데, 김 추기경은 빈민촌이든 교도소든 어디를 가든 가기 전에 그곳 사람들을 미리 불러 ‘문제나 바람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은 뒤 가장 필요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귀가 컸기에 다른 종교지도자와 달리 그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끊이지 않던 김 추기경 조문행렬
19일 명동성당을 찾은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이사장은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 ‘저런 분이 더 있어주어야 하는데 …’ 하는 아쉬움과 어디 기댈 곳 없는 암울함이 추모 열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추모객들의 입에서 나오는 김 추기경을 향한 극도의 칭송과 찬사들은 반대로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시절이 그만큼 희망이 없고 살기 팍팍하다는 호소라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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