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남 작가, 1960년대 창작시 4편 발굴해
출생~입적 ‘무소유 일생’ 그린 소설에 실어
법정스님의 일대를 다룬 소설이 발빠르게 나왔다. <향기로운 사람 법정>(은행나무 펴냄)이다. 삼성문학상과 KBS문학상을 수상했던 백금남 작가가 5년 동안 집필했다는 소설엔 법정 스님의 출생에서 출가, 수행, 입적에 이르기까지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일생을 복원했다.
유독 책에 대한 욕심이 강했던 학창시절과 길상사 창건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등이 실려있다. 백 작가는 법정 스님이 1960년대에 쓴 창작시 4편을 발굴해 소설에 실었다. 이 가운데 법정 스님이 1963년 10월1일에 <불교신문> 전신인 <대한신문>에 기고한 <어떤 나무의 분노>가 눈길을 끈다. 수백 년 된 해인사의 전나무를 비유해 쓴 이 시엔 4·19혁명으로 이뤄진 민주화가 5·16 군사쿠데타로 좌초한 시대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있다.
어떤 나무의 분노
- 물 맑고 수풀 우거진 합천 해인사
거기 신라의 선비 최고운 님이 노닐었다는 학사대에는,
유람하는 나그네들의 이름자로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수백 년 묵은 전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칼자국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헌장의
어느 조문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증언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들을.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을.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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