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친구를 그토록 잔혹하게 살해했을까.
3인조 트로트 걸그룹 ‘아이리스’의 보컬로 활동했던 이은미(24)씨를 수십차례나 흉기로 찔렀던 남자친구는 왜 그렇게 격분했을까.
경기 시흥경찰서는 고인이 다른 남자를 사귀려 한다는 이유로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조모(28.중고차매매 종업원)씨를 구속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19일 오전 2시15분께 시흥시 정왕동 이씨 집 앞에서 귀가하던 이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살해하고 달아난 혐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씨는 6~7개월 동안 교제애 온 이은미씨가 결별을 선언한데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둘 간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씨가 격분할 만한 더 큰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 사람은 참혹하게 죽어서 살릴 길이 없고, 한 사람은 살인자가 되어 인생의 파탄을 피하게 어렵게됐다. 생사와 운명도 이제 우리의 손을 떠나버렸다.
설사 조씨가 결별을 통보받고 화가 나 있었더라도 며칠전엔 다양한 ‘선택의 길’이 있었다. 만약 100명의 남자가 여친으로부터 결별 선언을 받았다하더라도 그들이 ‘선택한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어떤 남친은 여친을 찾아가 “어떻게 네가 내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이를 갈며 뺨을 갈겨주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고 뒤돌아설 것이고, 어떤 이는 친구나 가족에게 찾아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사랑했는데…”라며 위로 받고 눈물을 흘리며 정리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또 누군가는 ‘보란듯이 새 남친보다 더 멋져질 것’이라고 더 나은 캐리어를 쌓기 위해 몰두하거나 복근을 갈고 닦던지 더 멋진 여자를 어딘가로 찾아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깨끗이 잊어주겠다’고 돌아설 것이다. 누군가는 등산이나 수영, 헬스를 통해 땀을 배설하며 분노에너지도 함께 방출할 것이고, 다른 이는 여행을 하며 ‘둘의 관계에서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며 자신을 성찰하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는 심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상담을 받거나,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고, 담벼락을 발로 차거나 오락실 두더지를 패면서 분노를 내뿜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선택지 중에 조씨가 선택한 것은 단연 최악이다. 그는 상대를 죽였을 뿐 아니라 결국 자신까지 죽였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사람을 그토록 난자할 수 없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집착이다. 서구에 선(禪)을 전했던 숭산 선사는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것이고 많이 집착하면 많이 미친 것”이라고 했다. 집착의 정도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많이 집착하면 적절한 대응을 넘어서 과도하게 반응하게 된다. 면허정지를 시키면 될 일을 가지고 사형을 시켜버린다.
과거에 극심한 분노에 휩싸인 경험을 수십년이나 여러해 뒤 회상해 보면 `그 때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었는지 모르겠다'고 하게 된다. 그건 평상심으로 되돌아온 뒤의 일이다. 이미 그 사람이나 그 건에 대해 집착이 놓아진 뒤다. 그러나 당장 집착이 심한 상태에선 제정신을 차리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분노의 에너지가 가라앉는데도 시효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집착의 문제는 적절한 대응을 넘어 지나치게 과도한 대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파리를 잡기 위해선 파리채를 들면 되는 것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도끼를 들고 아무 곳이나 휘두르게 된다. 그러면 필경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다치게 된다.
현대인들은 경쟁에 매몰돼 욕구불만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화가 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노’의 해법을 단 하나로 설명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오랫동안 축적된 상처와 유전적 기질 등도 중대한 ‘숨은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욕구불만이 많다고 해서, 받은 상처가 크다고 해서, 유전적으로 남성호르몬이 넘치거나 다른 특질이 있다고 해서 모두 폭력을 쓰거나, 남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다.
한 때 백만부 이상 나갔던 <화>라는 책을 통해 화와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전해주었던 틱낫한 스님은 훌륭한 수행자라고 해서 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남방불교에선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면 화가 없어진다고 하지만, 틱낫한은 화가 없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다만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은 화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 수 없어서 쉽게 압도 당하는데 반해, 훌륭한 수련자는 화의 감정들이 고개를 들면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 뿐이라고 했다.
틱낫한은 화가 났을 때 이를 부인하지 말고, 화 난 자신을 인정하고 맞이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안에서 `분노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마음 속에서 울고 있는 아기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단다. 마음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일단 모든 것을 중단하고, 우선 그 아이를 먼저 달래야 한다는 것이다. 칭얼대는 화라는 아이를 잘 달래지 못할 때 그 아이는 실제 아이가 아니라 힘을 가진 어른일 경우가 많아서 언제 어느 때 조씨처럼 치명적인 폭력을 휘두르게 될 지 모른다는 게 틱낫한의 우려였을 것이다.
어찌됐든 틱낫한의 지적대로 일시적으로 아이를 달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생각의 변화가 와야한다. `생각이 즉 에너지'이기 때문에 생각이 화로 들끓고, 그 에너지가 또 다른 화를 재생산하는 것을 멈추려면 `분노를 가져왔던 생각의 변화', 즉 `신념의 변화'가 필요하다. ‘과도한 분노’의 뒤엔 ‘절대적 신념’이 감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대 이래선 안된다’, ‘이래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절대적 신념은 상대가 수백가지 선택지 중에서 얼마든지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조차도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교제하는 남녀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지만, ‘너는 이래서는 안된다’는 신념 앞에선 다른 선택지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왕조 봉건 시대의 노예가 아닌한 현대사회에서 절대적 독선에 절대적으로 굴복할 사람은 사실상 존재하지않으므로, 파국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상대가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을 내밀라”고 했다. 화를 잘내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가르쳐준 경지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뺨을 맞았을 때 다른 뺨을 내주기는 커녕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큰싸움으로 가지 않는 경지만이라도 갖추는 게 우선 시급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지고한 그리스도의 경지는 생각지도 말고, 그냥 그리스도 사촌격인 `그럴수도'라도 잘 따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대의 행동이 이해되지않아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럴 수도’를 되뇌어 수긍하기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치명적인 화는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제길헐 열은 받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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