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동양철학자 김영 인하대 명예교수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이 인공적으로 꾸며진 정원이라면, 여의도 남쪽 샛강 7만여평에는 자연미가 살아있다. ‘자연 그대로가 도(道)’라고 한 노자가 즐길 만한 곳이다. 봄과 가을이면 여의도 샛강생태공원방문자센터 샛숲학교에서 노자생태교실이 열린다. 이 센터 운영 주체인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고문과 샛숲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동양철학자 김영(69) 인하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교실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봄 이 교실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최근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청아출판사 펴냄)를 출간했다. 지난 21일 봄이 생동하는 샛숲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서울 여의도 남쪽 샛강 7만여평 가꾸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문으로 봉사
샛강생태공원방문자센터 샛숲학교 교장
4월·9월 주말마다 ‘노자생태교실’ 운영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펴내 기증 기독교신자·서당훈장·노장사상 강의 “‘팬데믹’을 불러온 생태위기와 기후위기 시대가 노자를 다시 불러오고 있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며 검소함과 절제를 강조했다. 노자가 말한 검소함(儉)은 ‘필요한 이상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고, 아낌(嗇)이란 ‘있으면서도 쓰지 않는 것’이다. 간디도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한 곳이지만 우리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너무나 가난한 곳’이라고 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노자가 말한 검박한 삶의 기쁨이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강’ 조합원 수백명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가며 삽과 호미를 들고 샛숲 가꾸기 봉사를 하다가 땀을 훔치고, 샛강의 개울가와 센터 옥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먹으며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바로 ‘무위자연’이다. 김 교수는 그 아름다운 조합원들을 위해 책을 출간하자마자 ‘한강’에 신간 100권을 기부했다.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미션스쿨인 대구 계성고와 연세대 국문과를 거쳐 태동고전연구소 지곡서당에서 3년간 전통 서당식으로 한문을 공부했다. 인하대 사범대 학장과 교육대학원장, 교수회의장, 민족문학사학회 대표, 한국한문학회 회장을 지내고, 교수 시절부터 지락서당에서 동양학을 가르쳐온 훈장이다. 그러나 그에게선 ‘꼰대스러움’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이들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며 먼저 담장을 허문다. 실직이나 해고를 당하거나 곤란을 겪은 지인들에게는 늘 ‘연금술사’(연금 받는 사람이 술을 산다는 뜻의 은어)를 자처하기도 한다.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가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며 무너진 상하의 사회질서와 도덕성 회복을 위해 예법을 강조했다면, 노자와 장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추구한다. 그래서 인위적인 윤리 도덕보다 자연스러운 도를 으뜸으로 여기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는 노자가 권유한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음)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서당 훈장임에도 공자를 태두로 한 유가보다는 노자의 도가를 더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신앙으로는 크리스천이다. 대학생 때 향린교회 청년부에 다니며 만난 민중신학의 태두인 신학자 안병무 박사의 영향으로 고통받는 민중을 위한 구원을 마음에 새긴 이후, 어느 자리 어느 곳에 있든 약자들과 함께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천인데 유가나 도가로 밥벌이 삼고 연구하고 책을 출간하면서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느냐’는 물음에 “음식도 맨날 같은 것만 먹으면 맛있어도 맛있는 줄 모르고, 지겹지 않냐”며 “어떤 종교든 고이면 썩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경직된 교리로 떨어지지만, 열려서 다른 경전들을 공부하면 자기 종교가 더 풍부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양에서 유입된 기독교와 동양의 전통사상은 다르지만, 지금 21세기 한국의 현실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과 서양의 문명이 섞여,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서양의 전자문명을 수용·발전시켜 세계적인 휴대폰과 반도체를 생산하고, 서양의 팝을 우리의 감각으로 창조적으로 변용해 ‘방탄소년단’(BTS) 같은 케이팝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우리 현실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동서양의 사상과 지혜를 창의적으로 융합할 필요가 있다”며 “노자가 말했듯이 자신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믹서에 과일을 가득 채우면 갈리지 않는다.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건물을 지을 때 튼튼하게 짓는다고 빈 공간을 두지 않으면 그 공간에 들어가서 사용할 수가 없다. 못도 비워두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넓혀야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도 노자의 가르침을 새겨야 한다고 했다. ‘승리한 전쟁조차 평화만은 못하다’는 노자의 말을 새기지 않는 지도자를 만나면 국민들은 큰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병대 출신인 김 교수는 “군대도 가지 않고 총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전쟁을 전자오락처럼 너무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고 했다.
“형님도 해병대 정찰기 조종사였는데, 베트남전 때 다낭의 미국공군 기지에서 2년간 참전했다. 그때 들은 참상, 그 ‘더러운 전쟁’의 진실을 잊을 수 없다.”
샛숲학교에서는 김 교수가 이끄는 노자생태교실을 오는 4월2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10~12시 네 차례 진행하고, 9월17일부터도 같은 시간대 네 차례 열 예정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방문자센터에 있는 샛숲학교 교장으로 노자생태교실을 운영중인 김영 인하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문으로 봉사
샛강생태공원방문자센터 샛숲학교 교장
4월·9월 주말마다 ‘노자생태교실’ 운영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펴내 기증 기독교신자·서당훈장·노장사상 강의 “‘팬데믹’을 불러온 생태위기와 기후위기 시대가 노자를 다시 불러오고 있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며 검소함과 절제를 강조했다. 노자가 말한 검소함(儉)은 ‘필요한 이상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고, 아낌(嗇)이란 ‘있으면서도 쓰지 않는 것’이다. 간디도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한 곳이지만 우리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너무나 가난한 곳’이라고 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봄 노자생태교실에 참여한 회원들이 김영교수(맨오른쪽)와 함께 하고 있다. 사진 샛숲학교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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